[관망경]수치화된 정책목표의 위험성

[관망경]수치화된 정책목표의 위험성

금융권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공무원 사회도 꽤나 숫자에 민감하다. 정부 부처든 지방자치단체든 사업을 하려면 돈을 굴려야 하고, 사업을 마무리 하면 숫자로 효과나 실적을 표시하고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에 밝고 성과를 명확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공무원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숫자에 매몰돼 일을 그르치는 일도 적지 않다. 건수 올리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부처들은 이런 사업을 지양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성과보고서가 ‘몇 건의 실적’ ‘몇 퍼센트의 달성률’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

현 정부 규제 개혁에서도 이런 우려가 크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규제개혁 목표를 경제부처 12%, 사회부처 8%로 일괄 적용했다.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탓에 부처는 불만을 쏟아냈지만 국조실은 끝내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다. 건수 올리기 식 규제 개혁, 부처별 과열 경쟁이란 지적이 터져나온 이유다.

결국 작년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국조실은 아직 평가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부처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국조실은 “의무가 아닌 권장 목표일 뿐”이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따로 제재하지는 않는다”고 한발 뺐다.

일선 부처들의 불만은 누그러뜨렸는지 몰라도 결국 정책 소비자인 국민과 기업들이 규제개혁의 실질 효과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숫자가 아닌 정성적 목표를 제시하고 부처에 달성을 독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국조실은 올해 규제개혁 목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처럼 일률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옳은 선택이지만 대신 적절한 목표와 평가방법이 곁들여져야 한다. 각 부처가 실제로 필요한 규제개혁 과제를 제시하고 최대한 달성하도록 지휘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백 개의 무의미한 실적이 아니라 열 개의 핵심 규제 해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