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의 다자간 통상교섭 역량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한·중국, 한·베트남 등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역대 최대 성과를 거뒀지만 정보기술협정(I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복수 회원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경제협정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다음달 옛 외교통상부 출신 인사의 복귀로 시작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질적 독자 통상교섭체제가 연착륙할 지도 주목된다.
15일 관계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TPP 협상 참여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 주력 수출산업과 직결된 ITA 개정 협상도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진척을 못보고 있다. 양자 FTA에서 거둔 성과를 다자간 FTA에서 놓쳐버릴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크다.
ITA는 지난 1996년 WTO 회원국 간 200여개 IT품목 무관세화를 결정한 것이다. 이후 달라진 IT산업 구도에 맞춰 무관세 품목을 확대하려는 협상이 2012년부터 진행 중이다. 2013년 말 한차례 타결 실패로 고착 상태에 빠졌다가 지난해 11월 그 간 대립했던 미국과 중국 간 합의가 이뤄지면서 다시 급물살을 탔다.
문제는 미·중 간 무관세화 합의 내용에 우리 주요 수출 품목인 디스플레이 패널, 이차전지 등이 빠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ITA 협상에서 강하게 반발하며 합의를 미뤘다.
이후 회원국 간 물밑 협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이 LCD·OLED 등 디스플레이 시장 개방에 여전히 부정적인데다 미국은 자국 이익과 큰 연관이 없는 사안으로 여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로서는 강대국간 이해관계에 묻혀 ITA 확대 개정의 최대 수혜품목인 디스플레이 시장 개방을 놓쳐버릴 상황이다. ‘주고 받는’ 협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마이너스 요소를 상쇄할 품목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TPP 대응에서 실기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TPP는 미국·일본·호주·캐나다·멕시코 등 환태평양 연안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FTA로 2010년 협상이 본격화됐다. 우리 정부는 2013년 11월 참여 관심 표명 후 지금까지 공식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다.
TPP 회원국이 올 상반기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타결 전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후발 참여국 입장에서 회원국과 개별 협상을 벌여야 하고 우리 이익을 관철시키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이대로 가면 지난해 중국·베트남 등과 잇따라 FTA를 성사시키며 글로벌 경제영토를 넓히는 데 성공한 정부가 또다른 구도의 경제영토 전쟁에서는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을 공산이 크다.
특히 다음달 통상 부문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통상 기능을 이관 받은 산업부는 통상차관보와 주요 국과장 등을 옛 외교통상부 파견인력으로 포진시키고 기존 산업부 인력과 연계해 지금의 성과를 이뤘다.
이들 외교부 출신 인력 대부분은 파견 기간을 마치고 다음달 원 소속부처로 복귀한다. 산업부는 자체 인력 중심으로 새 통상 조직을 꾸려 다자간 FTA에 대응해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와 다른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통상 분야에서 산업부의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산업·자원과 통상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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