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제가 62년 만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7인은 개인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에 선을 그었다.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할 죄목으로 판시했다.
헌법재판관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판결문에는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법철학이 묻어난다. 시대가 변했고 결혼과 성에 대한 의식도 바뀌었다는 논리도 한 몫했다.
그런데 유독 눈길 가는 위헌판결 요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겠다는 대목이다. ‘아랫도리 문제’까지 개입하는 건 과도하다는 취지다. 간통은 비도덕적이지만, 국가가 끼어드는 것 역시 정당하지 못하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헌재가 주목한 ‘자기결정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국가 역할론이다. 또 다른 것은 행복추구라는 기본권이다.
판결처럼 개인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법철학이 준용될 분야는 무수히 많다. 정치인이 흔히 말하는 법적안정성을 위해 법·제도 정비가 필요한 분야를 살펴보자. 우선 사이버 공간이다.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1년 전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사건 이후에도 사이트 대부분은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불허된다. 1억명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남긴 ‘최소수집의 원칙’은 먼 나라 얘기다.
디지털 유산 처리 문제도 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에 비해 한참 뒤처진다. 블로그 카페 등 온라인 계정 사용자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 물론 네이버 다음 등 특정회사 약관에 따르는 게 현실이다. 이 부분 역시 망자가 사망 전 자신의 계정과 온라인 머니, 저작물 처리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시급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존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사법고시 문제가 대표적이다. 공정한 사회구현과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사시 폐지는 재검토돼야 한다. 이른바 ‘신림동 폐인’ ‘사법고시 낭인’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시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게 과연 옳았을까. 참여정부가 결정한 정책 중 가장 이해되지 않는다.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어가면서도 희망의 사다리를 기어오르려는 개인의 의사는 존중돼야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헌재 판결이 주는 메시지다. 국가가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부서버리는 것은 과잉 개입은 아닐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기회를 주되, 보편적 법률서비스를 위한 묘책은 고민하면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앞으로 제2의 노무현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로스쿨은 경제적 약자에게는 엄청난 진입장벽이기 때문이다.
국가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 보장이다. 헌재판결을 계기로 국가형벌권 과잉행사는 지양돼야 한다. 개인 의사가 최대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시스템 개편작업도 필요하다.
사법시험처럼 개인의 행복추구권 역시 보장돼야 한다. 국가는 국민 누구나 공정한 사각의 링에 오를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공정하지 않으면 사회의 건강성은 나빠진다. 계층 이동이 자유로워야 건강한 사회다. 희망의 사다리는 인류 역사를 움직여 온 원동력이다.
김원석 글로벌뉴스부 부장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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