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삼성반도체가 설립된 이후 40년이 흘렀다. 삼성전자는 인텔에 이어 세계 2위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선다. 짧은 기간에 가히 놀라울 일이다.
반면에 시스템LSI 분야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 반도체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최근에 반도체에 입문하는 공학도가 점차 줄고 있고 그들의 향후 30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한국반도체의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팹, 디자인인프라, 팹리스,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에서 유독 디자인인프라 업체와 팹리스 업체가 특히 취약하다.
IC인사이트에 따르면 한국기업은 300㎜ 웨이퍼 생산능력에서 세계 35%를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 있고 막강한 생산력을 보유했다. 이런 최적의 조건에도 국내에서 많은 세계적인 팹리스 회사가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여러 문제 중에서 나는 한국의 팹리스 생태계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 팹리스 저변에는 크게 팹리스 업체와 그를 지원하는 인프라 업체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대기업에서 나와 창업하면서 만들어졌다. 2000년대를 거치며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국가적 지원도 적극적이어서 활성화되는 듯했으나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성장 한계에 직면해 많은 기업이 군소업체로 전락했다.
수십개에 달하는 인프라 전문업체 모습은 팹사이트와 팹리스를 연결짓는 기능에서 단순한 용역 전문업체로 변했고 더욱더 성장 한계에 봉착했다. 인프라 업체들의 위기다. 또 팹리스와 디자인인프라 업체 간 역할 분담이 모호해 상호 보완적 기능보다 중복성에 따른 비용 증가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시장 논리에 적합한 역할 구조 정립과 단순 분사가 아닌 협력모델 구축도 시급한 문제다. 현재까지 나타난 문제에 대해 인프라 업체 간 노력과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벤처기업은 서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특화하고 강화해 팹사이트와 팹리스 회사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태분야별 더욱 많은 업계 종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흔히 말하듯이 유태인 간의 협력모델, 중국인 간의 정보공유는 상당히 강력하다. 그들만의 사회적 공동체 의식과 상호지원 형태를 본받을 만하다.
제한적이기는 하나 한국 반도체인만의 새로운 체계를 세우자고 하는 것은 뒤늦은 생각일까. 한 사람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찾고 역할을 찾아가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올해는 벤처기업협회가 만들어진 지 15년이 되는 해다. 정부 지원 아래 지난해 신설법인 수는 8만5000개가 되었고 지난 2년 만에 벤처기업이 3만개에 육박했다. 우리나라 창업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창업 이후 성장까지의 관리도 중요하다.
혹자는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이상 새로운 시장에 집중하여 변화에 도전할 업체 출현을 기대하며 국내에서 팹 업체, 디자인인프라 업체, 팹리스 업체, 시스템 업체 간의 건실한 반도체 생태계 재구축을 화두로 다시금 산학연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다품종 소량 생산 시장이 다시 커졌고 이는 국내 팹리스에게 더 없는 부활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잘못 끼워진 단추가 있다면 다시금 풀고 끼워보자. 우리의 발끝에 길이 있다고 굳게 믿고 도전하고 실행해야 봐야 한다.
하나텍 이재만 대표 jaeman.lee@ihanat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