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부터 개인용 컴퓨터라는 PC가 우리 생활에 스며든 것을 40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PC의 두뇌 역할을 하는 연산장치(CPU)는 이후 286, 386, 486, 펜티엄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코어아이 시리즈로 연산속도와 성능이 급격하게 개선됐다. 한편 컴퓨터 크기는 작아지고 가벼워져 노트북에 이어 지금은 스마트폰, 태블릿 등 휴대형 기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과거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보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PC가 도입된 이후 불과 30여년 만에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큰 변화가 일어난 데에는 눈부신 실리콘 반도체 기술 발전이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에 수천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었던 것이 지금은 수십억개가 있으며, 이 집적도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18개월 만에 두 배씩 증가했다.
그 결과 트랜지스터 크기는 1980년대에 1㎛, 2000년대 초에 100나노미터를 돌파하고 최근에는 14나노미터에 이르고 있다. 14나노 기술에서는 3차원의 입체적인 구조를 이용해 19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다. 그러면 실리콘 트랜지스터는 얼마나 작아질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7나노까지 가능하다고 하지만 발열과 생산원가 상승 등의 문제로 인해 10나노미터가 한계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의 기술 로드맵으로 인식돼 왔으나, 더는 이 법칙이 적용되지 못하는 상황은 기술적 공황상태를 초래하고 컴퓨터 발전 속도가 둔화돼 경제·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반도체 기술 발전이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이 벽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반도체는 우리나라 주요산업으로서 국가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실리콘 이후(Post-Si) 반도체 기술개발은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매우 중요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새로운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은 약 3000억달러(약 330조원)에 달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실리콘 이후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해 선진국은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실리콘 반도체 기술이 한계에 이름에 따라 차별화 된 기술과 경쟁력으로 메모리 시장의 리더십을 지켜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 20%에 불과한 600억달러 규모 메모리 시장은 50% 이상의 점유율로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주류인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6%대 점유율로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실리콘을 대체하는 새로운 반도체 소재개발은 메모리 시장과 더불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모리 위주의 기형적인 구조를 교정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KIST는 오래전부터 연구실 단위로 화합물반도체를 이용한 기술을 개발해 왔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우수한 원천 기술들이 개발됐다. 기업은 치킨게임으로 불리는 기업의 존망을 건 피 말리는 수익 경쟁으로 최근 양산이 이루어진 14나노 공정기술 안정화와 다음 세대인 10나노기술 개발을 위한 단기 연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5년 후를 내다보고 실리콘 이후 새로운 반도체 기술에 도전하는 것은 KIST와 같은 국가 연구소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가연구소가 융·복합연구로 협력을 강화하고 연구실별로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힘을 모은다면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반도체 기술개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60여년 전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기술이 진화해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듯이, 이제는 국가연구소가 앞장서 새로운 반도체 기술 혁명에 도전하고 있다.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 연구소장 presto@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