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그루터가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엔진 ‘타조’는 아파치소프트웨어재단(ASF) 최상위 레벨 프로젝트다. 우리나라가 주도한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으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SK텔레콤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개발(R&D) 투자 등 협력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아쉽게도 동행은 짧게 막을 내렸다. 밀월기간은 길지 않았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협력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사례는 많다. 사업수행과정에서 양사 이해기반이 다르거나 기술협력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대기업은 자본과 시장을 갖고 협력구도를 그리지만 끝이 좋지 않다. 사업 수행과정에서 문화적 차이, 투자에 대한 몰이해 등은 치명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양사 간 신뢰가 없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은 그만큼 어렵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운영하는 스콜 달링 EMC 수석부사장이 ‘EMC 월드’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자본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달링 수석부사장도 진부한 표현임을 알았을까. 워런 버핏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토를 달았다. 그는 “35년간 업계(VC)에서 몸담으며 관계를 만드는 데 가장 집중했다”며 “결국 문화와 관계가 사업 전략을 잡아먹게 된다”고 말했다. 관계가 나쁘면 일은 결국 성사되지 못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지적했다. 익스트림IO·VM웨어·피보탈 등 벤처 투자에 수년간 정성을 쏟아 결국 EMC연합(퍼더레이션) 핵심 사업 동력으로 만들어낸 그가 강조한 ‘신뢰’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동반성장·협력 구축의 신뢰와는 무게가 달랐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타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모범사례를 완성하지 못한 채 무산된 것도 서로의 믿음 부재에서 비롯됐다. 타조를 세계 시장에 날 수 있게 하는 날개는 동업자 정신이다. 결국 신뢰뿐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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