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규모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착공하는 자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대표 자격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맞이했다. 15일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대표가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이 빠르게 삼성 경영의 최앞단으로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 3세 경영체제’가 사실상 시작된 것으로 관측한다. 이 부회장이 ‘미래의 삼성’에서 ‘현재의 삼성’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그룹 투자와 사업계획, 인사 등 중요 사안 대부분을 판단해 결정한다. 다만, 그동안은 한발 뒤에 물러서 판단과 조율을 해왔다. 하지만 그룹 주변 분위기나 최근 행보에서 그는 삼성을 대표하는 책임자다운 모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라며 “그가 삼성의 사업과 조직, 기업 문화에 어떤 자기만의 색채를 입혀 나갈 것인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이재용의 삼성’은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사업상 두드러진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이 모든 산업에 관여하기 보다는 잘할 수 있고 미래성장이 가능한 산업 위주로 새판을 짜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는 수익성 있는 사업에 더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핵심은 전자와 금융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1년간 여러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로 이어지는 전자 계열사 연결고리는 더 강화됐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지난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이 부회장 주도로 올해 출시된 갤럭시S6와 S6엣지가 인기를 끌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반도체 부문은 선제적 투자로 D램과 낸드플래시는 물론이고 시스템반도체(AP 등)까지 위상을 높이고 있다.
금융 비즈니스 강화도 진행 중이다. 기존 국내에 머문 금융을 뛰어넘어 글로벌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전자와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 모델 확대까지 꾀한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해외 금융사의 인수나 제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일 엑소르 이사회 참석을 위해 출장을 떠난 것도 투자전문 기업 엑소르로부터 금융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협업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자가 기존 강점이 있던 분야라면 금융은 확실한 ‘이재용 브랜드’가 될 분야다.
반면, 삼성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화학·방산부문 4개 계열사는 한화에 매각했다.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자체 연구개발(R&D) 중심으로 회사를 키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달리 이 부회장은 인수합병(M&A)과 사업 제휴를 통해 외부의 혁신까지 삼성 안으로 가져오는 전략을 편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인수한 업체는 총 8개인데, 지난 5년 동안 삼성그룹의 전체 M&A가 14건에 불과했다. 앞으로 ‘삼성발’ 글로벌 협업과 얼라이언스 참여, M&A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기업간거래(B2B)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은 기존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최근 기업용 스마트폰과 빌트인 가전, 스마트 사이니지 등 B2B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오는 19일부터는 4주간 사내 방송을 통해 그룹 전 임직원에게 기존 일반 소비자 부문 이외에 B2B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B2B는 시장 상황에 따라 큰 부침이 있는 B2C 사업과 다르다. 한 번 거래처가 확보되면 보다 안정적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삼성의 미래신사업 육성은 아직까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바이오제약·의료기기·LED·자동차용전지·태양전지 등 5대 삼성 신수종 사업에 얽매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시장 상황과 삼성의 특장점에 맞춰 신산업 발굴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물인터넷(IoT)에는 전자를 넘어 계열사의 공력 집중화가 예상된다. 최근 IoT 플랫폼 ‘아틱’을 해외에 공개하고 차세대 산업 생태계 주도권 확보를 노린다. IoT향 가전과 모바일 플랫폼 등이 마련중이다. 주요 계열사와 연계한 IoT 서비스 비즈니스도 구상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은 물론이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용 배터리, 자율주행자동차 모듈 등의 차세대 에너지·자동차 부품사업에도 꾸준한 드라이브가 예상된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