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이재용식 소통·실용의 `Young 삼성`, 조직문화가 바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출장 때 운전기사 이외에 별도 의전을 두지 않는다. 그는 직접 차에서 가방을 내려 홀로 공항 터미널을 가로지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출국 시 그룹 수뇌부와 의전 인력이 총출동한 것과 비교하면 단출하다.

과거 이건희 회장 출장 의전을 경험한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스타일’은 일본 도쿄 출장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을 찾을 때면 전용기 전용 시설이 완비된 나리타공항을 애용했다. 도심에서 70㎞가량 떨어져 접근성이 낮지만 ‘조용한 셔틀경영 집중’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부회장은 도심에서 20분 거리인 하네다공항을 자주 찾는다. 민항기를 타야할 때 나리타행만 있는 인천까지 가지 않고도 김포에서 하네다행을 이용할 수 있어 출장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든 간다’는 그의 ‘나 홀로 출장’ 거리는 지난 1년간 공개된 것만도 지구 한 바퀴에 달한다.

시대변화에 발 빠르게 맞추는 노력도 돋보인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가 사내 공식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훈민정음’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로 바꾼 것과 지난 4월 확대된 ‘삼성전자 자율출퇴근제’가 대표적이다.

훈민정음은 삼성전자가 개발, PC사업 확대와 함께 육성한 삼성의 대표 소프트웨어(SW)였지만 MS워드, 한글 등에 비해 점유율이 낮아 시장에서 고전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공식 워드프로세서로 20년간 쓰이며 일선에서는 외부와 호환성 문제로 업무상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일부 사업장에서 암암리에 MS워드를 쓰는 일까지 생기자 ‘MS워드 양성화’라는 업무 경쟁력 강화 카드를 빼들었다.

자율 출퇴근제는 주당 40시간, 주 5일, 하루 최소 4시간 원칙 하에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해 직원의 일과 여가 양립을 가능케 했다. 2009년 시범도입 후 직원이 일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적용대상 확대로 구성원의 업무 만족도와 창의성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이는 일찍이 해외 경영자와 친분을 맺으며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관심이 높은 이 부회장 의지다. 과거 일사불란한 일본식 조직문화를 벤치마킹한 이병철 창업주, 이건희 회장의 경영방식과 대조된다.

‘화두 경영’은 올해 자취를 감췄다.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로 ‘한계 극복’ ‘마하 경영’ 등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 부회장은 계열사별 자율적 판단에 맡겼다. 대신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오랜 원칙을 확고히 해 책임도 강화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의 지난해 12월 사장 승진과 일본향 갤럭시S6에 ‘삼성(SAMSUNG)’ 로고를 지운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 사장은 옛 LG반도체 출신으로 ‘외부 수혈’ 인사지만 배경보다 ‘메모리 최대실적’이라는 결과로 실력을 증명해 이 부회장 주도 첫 인사에서 메모리 수장으로 낙점됐다. 삼성 로고 삭제는 일본 내 갤럭시S6 성공을 위해 그룹의 상징을 버린 결단으로 명분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변화된 삼성의 기조를 상징한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의사결정 구조를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바꿔 무한경쟁시대를 헤쳐 나갈 방안을 더 많이 모색하자는 의미다. 지난해 3월 개설된 삼성전자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는 1년간 6만3973명이 의견 15만7517건을 공유하며 특허 61건을 포함한 105건의 자산화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대상을 20만 해외 임직원으로 확대하는 등 사내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세간에서 ‘이재용 리더십’에 관심과 우려가 있지만 그의 행보 중 공개된 건 1%도 안 된다”며 “이 부회장이 그간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며 경영일선에 ‘조용히’ 참여했다면 이제 그룹의 실질 리더로서 쌓아온 실력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