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나와 숲을 보고, 꿈에서 나와 꿈을 보는 재충전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2012년 5월 29일 18대 국회 마지막 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심중에 묻었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년여 정치휴식을 끝낸 그는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고향인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당선돼 대통합 협치 정치를 시작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원희룡 제주지사를 지난달 29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제주도서울본부에서 만났다. 원 지사는 이날 오전 11시 제주시에서 가진 제주 의녀 김만덕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서울로 왔다.
원 지사는 제주도를 탄소 없는 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전국 자치단체장 중 처음으로 전기차를 관용차로 사용하고 있다. 도정 철학으로 협치(協治)를 제시했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제주와 북한 간 크루즈라인 구축과 창조산업단지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인터뷰는 40분간 진행했다.
-비행기 좌석은 뭘 이용하나.
▲이코노미석이다. 내가 지사에 취임한 후 이코노미석을 타도록 결정했다.
-고향 도백(道伯)으로 일하는 소감은.
▲좋은 점은 고향이어서 푸근하다. 힘든 점은 자칫 공사(公私) 구분을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나 친척들이 이런 점을 이해해 고맙게 생각한다.
-중국 마조라는 스님은 제자들에게 “고향 가지 마라. 고향에 가면 도인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제주에도 ‘동네 심방(무당)은 안 알아준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신통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잘못한 게 많아 언행을 각별히 조심한다(웃음).
원 지사는 제주가 낳은 천재다. 제주제일고를 졸업하고 1982년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했고 서울대에 수석 입학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도 했다. 34회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해 수석 3관왕을 기록했다. 서울지검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서울 양천갑에서 3선을 했다. 당내 대표적인 소장 개혁파다.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역임했고, 17대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도 출마했다.
-파워 블로거였는데 요즘 블로그를 왜 하지 않나.
▲국회의원 시절 열심히 했다. 6년간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 ‘블로그 원희룡’이란 저서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관용차로 전기차를 이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전기차는 2014년 8월 15일부터 관용차로 사용하고 있다. 제주는 2030년까지 무탄소 청정섬 실현이 목표다. 지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어떤 점이 좋은가.
▲소음이 없고 연료비도 절감한다. 전기차는 1㎞당 연료비가 평균 102원이다. 3000원이면 150㎞를 간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레이자동차는 2만㎞ 주행 시 휘발유 값이 280만원 든다. 전기차는 36만6000원이다.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전기차 특구 지정은 언제하나.
▲전기차 특구지정을 하려면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연구 중인데 8월까지 로드맵을 마련하겠다. 올해 말까지 전기차를 3000여대로 늘리고 2030년까지 도내 운행차량 37만1000대를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다. 6월에 단계별·연도별 세부계획을 담은 중장기 전기차 보급계획을 발표한다. 7월까지 전기차 보급촉진과 이용 활성화를 위한 지원조례도 제정한다. 모든 관용차도 단계적으로 전기차로 대체한다. 제주도를 전기차 글로벌 메카로 만들 계획이다.
-도정(道政) 추진의 원칙은.
▲대전제는 도민 전체의 이익이지만 투명하고 명확한 기준을 지키는 일이다. 더 중요한 점은 도민 합의(合意)의 정치다. 나는 새로운 정치형태인 협치로 이해충돌을 해결하려 한다.
-협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잘 안 됐다.
▲협치는 정신이다. 완성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다. 협치를 하려면 민관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도 정성을 다하겠다. 정책 구상과 집행에 민관 협치를 하면 성과가 더 크다.
-제주와 북한 간 크루즈 라인 구축은.
▲이 사업은 제주도가 구상했다. 제주에서 출발해 북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역내 도시를 순회하는 동북아 평화크루즈 관광이다. 성사하면 한반도 신뢰구축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북측에 감귤 보내기 재개와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한 교차관광사업, 한라산과 백두산 생태환경보존 협력 사업을 제안했고, 제주포럼에 북측 인사를 초청했다. 정부 승인 아래 접촉했지만 이번 제주포럼에는 북측이 불참했다. 8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백두산과 한라산을 연계한 관광, 생태환경보존 협력 사업을 논의 중이다.
-‘제주 카본프리 아일랜드’ 비전은 계획대로 추진하나.
▲이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제주 전력 100%를 풍력과 같은 청정에너지로 대체하고, 제주도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혁신 비전이다. 지난 5월 26일 ㈜LG와 글로벌 에코 플랫폼 협약을 체결했다. 창조경제의 하나로 2018년까지 3조원을 투자한다. 기반구축에 필요한 민간자본 유치와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LG를 포함한 민간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내년 사업을 시작한다.
-창조산업단지 조성은 어떻게 되나.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를 조성해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연구개발(R&D)기업, 게임업체 100여개가 입주했다. 도시첨단산업단지도 제주 시내에 조성한다. 세계 최초 물소재 산업단지도 조성 중이다.
-제주 창조혁신센터는 언제 개소하나.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제주도를 스마트 창조도시로 만든다. 공장은 없고 창업기업들이 입주해 연구하는 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다음카카오와 추진 중이다. 6월 말 개소가 목표다.
-재임 중 이루고 싶은 일은.
▲제주도에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조성해 제주 신산업을 발전시키고 싶다. 제주공항도 확장해야 한다. 현재 국토해양부에서 기존 공항 확충과 제2 공항 건설 용역을 진행 중인데 11월께 결과가 나온다. 강정마을 문제와 크루즈 신항만 건설도 마무리짓고 싶다.
-정치권이 “특권을 내려놓겠다”지만 빈말이다. 정치 불신을 어떻게 보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천권 행사와 지역 정당 같은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도지사와 국회의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도지사다. 제주도는 한국의 축소판이다. 중국 관광객 급증과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 전기차, 풍력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미래산업, 해양, 관광, 환경 분야에서 해야 할 사업이 많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공직자 인사 기준은.
▲먼저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다음은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고 구성원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제주도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했다. 이날은 주위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오후 6시에 퇴근하라고 강조한다. 나도 오후 6시 칼퇴근한다.
-여권 내 잠룡으로 거론한다. 대권(大權) 구상은.
▲지난해 지사 선거에 출마할 때 도민과 약속한 게 있다. 당선되면 주어진 임기 4년간 다른 데 눈길 주지 않고 도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했다. 내 임기는 2018년까지다. 그때까지 제주도정에 전념하겠다.
-여권에서 강력히 원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도민과 약속은 지켜야 한다. 지금은 제주 발전이 최우선이다. 제주 혁신과 변화가 한국 미래 발판이다.
-공부의 신(神)이라고 하던데 비결은.
▲공부할 때 집중도를 높이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했다. 출제자 입장에서 내용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훈련을 했다. 사법고시는 채점자 시각에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한 후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했는데.
▲그건 거짓말이다(웃음). 당시 5공 정부는 과외를 금지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다만 나는 가난해 과외를 받은 일이 없다. 스스로 공부했다.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를 넘어 오포, 칠포라는 말을 들으면 책임을 통감한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하면 길이 보인다.
-좌우명과 취미는.
▲진인사(盡人事)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운동을 좋아한다. 그중에서 마라톤은 풀코스를 여덟 번 완주했다. 요즘은 무릎에 무리가 와 하프코스를 달린다. 요리도 즐겨 한다. 탕수육과 전복탕인데 아이들이 좋아한다. 요리사 자격증은 없다.
그는 질문에 막힘이 없고 논리가 정연했다. 핵심을 피하거나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서른 여섯 살 때부터 염색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인터뷰 중간에 해맑게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