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5’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관찰한 차는 ‘미라이(Mirai)’였다. 미라이는 도요타 4인승 세단형 수소연료전지차(FCEV)로 2013년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한 현대차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이하 투싼ix)’에 이은 두 번째 상용 모델이다.
정 부회장은 미라이 충전기와 엔진룸 등을 유심히 살펴보며 후발 경쟁사 기술을 점검했다. 차세대 친환경차 시장을 놓고 벌어질 현대차와 도요타의 치열한 경쟁을 유추할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세계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추격자에 머물던 우리나라가 진정한 ‘퍼스트 무버’로 나선 것이 수소연료전지차 분야다. 시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의 소리 없는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 글로벌 자동차 업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차는 1998년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착수한 후 15년 만에 상용화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양산성을 고려해 투싼ix 연료전지 시스템을 모듈화하고 전기동력 및 제어 부품과 배터리 시스템 등 각종 부품 95% 이상을 국산화했다. 사실상 완벽한 독자 기술로 양산에 성공한 셈이다. 연료전지, 구동모터, 인버터 등 주요 핵심 부품을 모듈화해 기존 가솔린 엔진 크기와 유사한 수준으로 소형화하며 생산 효율성과 정비 편의성도 향상시켰다.
독자 기술에 바탕을 두고 수소연료전지차 파워트레인으로는 최초로 북미 10대 엔진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현대차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100㎾급 연료전지와 구동모터를 탑재해 차세대 친환경차 경쟁에서 한발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자동차 전문 미디어 워즈오토는 “투싼ix는 무공해와 긴 주행거리, 짧은 충전시간 삼박자를 모두 갖췄을 뿐만 아니라 SUV라는 특성상 넓은 실내공간까지 제공해 동급 최고 상품성을 구현했다”고 평했다.
투싼ix는 파워트레인 부품 외에 24㎾ 고전압 배터리, 700기압(bar) 수소저장 탱크 등을 탑재해 최고속도 160㎞/h를 낸다. 정지상태에서 100㎞/h에 도달하는 시간은 12.5초로 내연기관 자동차에 견줄 수 있는 동력 성능을 갖췄다.
물 이외에는 배기가스 배출이 전혀 없고 영하 20℃ 이하에서도 시동이 가능하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운행 가능한 거리인 415㎞에 달한다. 최근 독일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가 현대차를 방문해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을 타진할 정도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차가 선발주자 이점을 살려 시장 선점에 나선 가운데 도요타는 지난해 12월 세단형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를 자국에 출시했다. 도요타는 글로벌 특허 공개와 강력한 정부 지원 등을 앞세워 현대차를 추격 중이다.
미라이의 큰 특징은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650㎞)가 투싼ix에 비해 50% 이상 길다는 점이다. 최고속도도 175㎞/h로 투싼ix보다 빠르다. 후발주자로서 독자 플랫폼 개발과 주행거리 연장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연료전지 시스템과 하이브리드 기술을 융합하고 3분 정도의 짧은 충전 시간으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동등한 편의성을 갖췄다.
글로벌 마케팅도 현대차에 비해 적극적이다. 도요타는 미라이 출시와 동시에 자사 수소연료전지차 관련 특허 실시권을 무상 제공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무상 제공되는 특허는 세계 약 5680건에 달한다. 연료전지 스택 관련 특허 1970건을 비롯해 3350건에 달하는 연료전지 시스템 제어 등 개발과 생산 근간이 되는 특허를 개방했다. 마케팅으로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에서 후발주자 약점을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가 투싼ix 가격을 대폭 인하한 것도 이 즈음이다. 현대차는 올 2월 1억5000만원인 투싼ix 가격을 40% 이상 인하한 8500만원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미라이 일본 출시 가격이 세전으로 670만엔(당시 약 6200만원)인 점을 감안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미라이는 출시와 동시에 증산을 결정할 만큼 시장 주목을 받았다. 자국 출시 직후 1개월간 계약 대수가 1500대에 이르자 올해 700대에 이어 2016년 2000대, 2017년 3000대 정도로 생산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와 도요타의 본격적인 수소연료전지차 경쟁은 올 하반기 미국 시장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현대차가 리스 판매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가운데 도요타도 하반기 미라이를 미국 시장에 선보인다. 도요타는 리스 판매와 함께 직접 판매까지 병행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도요타 경쟁 판도는 공간 활용성을 앞세운 투싼ix와 주행거리에서 강점을 가진 미라이가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또 차기 모델이 출시될 2~3년 내에 양 사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는지가 중장기 판도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박성규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부장은 “현대차가 경쟁사보다 2년 앞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에 성공했지만 강력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도요타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며 “수소연료전지차는 기술 혁신에 힘입은 가격 인하 효과가 커 연료전지 시스템 효율 향상과 생산 물량 확대에 따라 시장 주도권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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