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산업 앞날이 ‘시계제로’ 상태다. 지난해 소재부품 무역수지 흑자 1000억달러를 돌파해 ‘단군 이래 최대 성과’라며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잠시뿐이었다. 수년 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 신호가 사방에서 울린다.
발원지는 중국과 일본이다. 생산기지로 깔보던 중국이 최대 위협국으로 성장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위세가 부쩍 거세다.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세계 반도체 기업과 기술,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최근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메모리 반도체 3위 기업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약 26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속내를 드러냈다. 후방 지원군으로 삼고 있는 대만 기업도 흡수하려는 움직임이다. 기술 확보를 위해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계에도 러브콜을 보내고 전문 인력도 유치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정책은 장기전이다. 수익성보다 꾸준한 물량 공세로 시장 장악력을 높여 경쟁 상대를 물리치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강화하면서 선두권에 포진한 우리 반도체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올 초 일제히 생산 라인 확대에 나선 디스플레이도 전략은 동일하다. 치킨게임으로 끌고 가 수년 내에 경쟁상대를 모두 물리치겠다는 심산이다. 내년이면 생산 규모가 우리나라를 뛰어넘는다. 이제 거칠 게 없다. 엄청난 내수 시장으로 배짱이 두둑해져 다른 국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다.
엔저 무기를 장착한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세계 최대 수요처인 애플에 패널을 공급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대면적,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리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탄탄한 소재부품 후방군을 이용해 새롭게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다. 틈새만 보이면 어김없이 파고들어올 기세다. 자본력과 시장은 중국에 뒤지고 소재부품 생태계 수준은 일본만 못하다. 우리가 내세울 무기는 한발 앞선 신기술 개발뿐이다. 무역수지 흑자 최대 달성 얘기는 접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