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쌀’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스마트폰, TV, 백색가전 등 주요 완제품 수출이 글로벌 경기부진으로 위축됐을 때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반도체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는 데도 반드시 버팀목이 될 품목임이 분명하다.
정부가 반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끝 간 데 없이 줄여 나가고 있다. 사실 반도체산업 덩치에 비하면 예산이라고 하기에도 낯부끄러운 규모인데, 그마저 삭둑삭둑 잘려나간다. 내년부터는 사실상 신규 R&D지원은 없다고 봐야 할 지경이다.
정부의 궁색한 논리는 이렇다. 삼성·SK하이닉스 같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1, 2위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들인데 무슨 정부 지원이 또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술 개발하도록 풀어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국민적 오해를 사기 충분한 사안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핵심인 집적기술로만 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칩 설계와 디자인, 공정 설계, 장비제작 등 수많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산업계 종합예술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는 필요 없더라도 수많은 중소기업의 생명줄 같은 지원금이 바로 정부 주머니에서 나오는 R&D예산이다. 결코 가벼이 봐선 안 되는 문제다.
지금 대기업이 수익을 내고 있으니, 예산을 끊어도 된다는 단선적 접근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 반도체 시황이 그나마 받쳐주는 지금, 그동안 여력이 없었던 차세대 반도체 등 기술분야 투자는 견고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들이 진행하는 공정·기술 혁신에 따른 낙수효과가 중소·중견기업까지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그 효과는 지원규모의 수백 배, 수천 배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보는 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미래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 곧 낭패를 볼 수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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