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새 기술은 허름한 차고에서 탄생했다. 아이폰의 선조 격인 애플컴퓨터도,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 사이트도 모두 작은 차고에서 만들어졌다. 실리콘밸리 기적은 차고 안에서 뚝딱거리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미국 ‘메이커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메이커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메이커 페어’를 열고 “오늘의 DIY(Do It Yourself)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고 강조했다. 메이커 문화 활성화로 지난 30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온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중국 정부도 최근 광둥성 선전시에서 ‘메이커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1억명 메이커를 양성해 중국 제조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도 공공기관이 주축이 돼 3D프린팅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메이커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메이커(maker)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뜻한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비싼 금형 비용 등 장벽 때문에 만들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3D프린터, 레이저커터, CNC 조각기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적은 비용으로도 머릿속 아이디어를 현실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메이킹은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다. 메이커로 촉발된 비즈니스는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 19일 대전에서 세계과학정상회의와 연계해 열린 ‘세계과학기술포럼’에서 저성장 문제 해법으로 ‘네트워크화와 프로슈머의 공유경제’를 제시했다. 사물인터넷, 신재생에너지, 무인 운송수단에 기반을 둔 한계비용 제로의 디지털 공유경제야말로 지속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끌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즉 개인 창작과 오픈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모든 기술이 공유되는 가운데 창의적 상품과 서비스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리프킨 이사장은 “이미 세계 600만명 학생이 온라인으로 오픈소스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며 “3D프린팅과 오픈소스 등 한계비용 제로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끌고 나갈 플랫폼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강국인 한국이 글로벌 공유경제에 앞장서는 등대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메이커 양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연구개발 중심은 미국으로 2013년에만 총 4330억달러 연구비를 투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시아가 연구개발 투자에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연구개발 투자를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고, 우리나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IT강국인 우리나라가 디지털 공유경제를 선도하는 것도 먼 미래 일은 아닐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이번 세계과학정상회의 기간에 연계 프로그램으로 세계과학기술포럼 특별세션 ‘과학창의로 여는 미래’를 진행하고 ‘대한민국 과학기술창작대전’을 개최했다. 이는 메이커 문화 확산을 위한 ‘5000만명 메이커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국민 누구나 언젠가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하기 바란다.
비록 우리 한국에는 미국처럼 차고 문화는 없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반도체 기술과 기능올림픽 강국으로서 섬세한 손재주 DNA를 가지고 있다. 외국 과학정상들도 감탄한 개인 창작자의 열정과 창의적 작품들에서 메이커 한국 미래를 본다. 한국형 메이커 문화 확산을 위한 민관 공동노력이 향후 우리나라 제조업 혁신을 이끄는 초석이 되기 바란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kofac@kofac.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