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기기 수출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주요 수출국으로 꼽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의료기기 진입장벽을 높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내수 시장이 협소해 기반이 취약한 한국 의료기기 산업계에 수출 차질은 치명타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자국 의료산업 육성 정책으로 외국 기업 대상 진입 장벽을 높였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월 정부 정책으로 발표한 외국 의료기업 러시아 입찰참여 제한법령이다.
정부입찰 과정에서 두 개 이상의 러시아 기업이나 유라시아경제연합(EEU)회원국 기업이 참가를 신청하면 다른 외국기업은 참가할 수 없게 한 것이 골자다. 대상 의료 장비는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장비(CT), 심전도기록기 등 17종으로 국내 의료기기 수출과 연관성이 높은 품목이다.
러시아는 최근 현지화 조건도 강화했다. 제품 구성 중 수입품 가격이 최종 생산품 가격 50%를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초음파 장치는 러시아 내에서 조립·조정·포장을 거쳐야 한다. 외국 기업 러시아 시장 진출 조건으로 현지화를 내건 것이다. 기준에 맞으면 ‘메이드 인 러시아’로 인정,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도 의료기기 자국 보호 정책이 두드러진다. 업계는 의료기기 판매에 필수 요건인 중국식약처(CFDA) 인허가 획득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품목허가 취득은 등급에 따라 평균 14.3개월이 소요될 정도다.
공공 시장에서 정책적으로 자국 제품을 우선 구매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중국이 자국 산업 보호 정책과 비관세 장벽 등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사 단체인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중국이 자국 시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한해 공공조달 입찰 자격을 준다”며 “과거 중국 업체가 판매하면 됐는데 지금은 생산까지 중국 회사여야 기회가 생긴다”고 전했다.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은 우리나라 의료기기 수출에 중요 지역이라는 데 있다. 2014년 우리나라 의료기기 러시아 수출액은 1억5000만달러(약 1699억원). 171개 기업이 167개 품목을 수출한 결과다. 러시아 의료기기 수입은 2014년 30만달러(약 4억원)에 그쳐 흑자 구조다.
중국 대상 의료기기 수출은 2013년 2억3145만달러(약 2621억원)로 224개 기업이 174개 품목에 해당된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 수입한 의료기기는 391개 기업 220개 품목으로, 1억2118달러(약 1372억원) 수입됐다. 2011년까지 중국과 의료기기 교역은 무역수지 적자였지만 2012년부터 흑자를 유지한다. 중국 의료기기 시장은 2013년 기준으로 161억달러(약 18조2364억원)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다.
이들 국가의 비관세 진입장벽 강화는 곧 국산 의료기기 수출 약화를 불러 적극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외국 기업 정부 입찰 참여 제한은 러시아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현지 기업 통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생산이나 기술협력, 제조공장 설립 등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도 적극적 현지화 전략이 요구된다. 단독 투자나 기술 이전 등 합작 형태로 중국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춰야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비관세장벽, 공공시장에서 자국보호정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정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자료: 보건산업진흥원, 업계 종합)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