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모리반도체는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 세계 낸드플래시 점유율 1위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중국이 공격적으로 메모리 산업에 투자하며 위협했고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간 합종연횡으로 경쟁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인텔이 서버 시장을 중심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다시 뛰어든 것도 큰 도전이다.
취약한 우리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중국과 격차가 벌어졌다. 중국이 반도체설계(팹리스)와 파운드리에 집중 투자하며 현지에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메모리에 편중된 산업, 특정 대기업에 종속된 장비·부품·소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 내년도 반도체 관련 정부 예산마저 급격히 줄어드는 분위기여서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연구기반 마저 흔들리고 있다.
전자신문,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제8회 반도체의 날에 앞서 27일 서울 한국기술센터에서 좌담회를 열고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국내 반도체 산업 현황을 진단하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했다.
◇참석자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산업정책관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임종성 청주테크노폴리스 고문
-조중휘 인천대학교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
※사회: 서동규 전자신문 소재부품산업부장
-사회(서동규 전자신문 소재부품산업부장)=세계 반도체 업계가 격변기를 맞았다. 주요 반도체 수출국인 중국은 우리에게 큰 기회지만 동시에 위기다. 중국 반도체 산업 성장세가 워낙 빨라 대안이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 산업 현황부터 짚어보자.
▲남기만(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수출 실적만 보면 타 업종은 어렵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9월말 기준 4.6% 수출이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올해 대규모 국내 투자계획을 발표해 국내 장비·소재 기업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전체적으로 메모리 산업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반면에 비메모리인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어려움이 많다.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이와 잇몸 관계인데 파운드리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팹리스 경쟁력도 함께 낮아지는 영향이 있다. 팹리스 창업이 현저히 줄었고 상위 기업 성장률도 둔화했다. 극단적으로 팹리스 업계가 고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심각하다. 그동안 반도체 산업을 이야기할 때 세계 최고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에 도취돼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는 일종의 착시효과가 만연했다.
-사회=반도체 대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보는가.
▲임종성(청주테크노폴리스 고문)=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국이 중국과 미국인데 두 나라가 메모리 패권을 쥐면 지금 한국이 누리는 D램 산업 입지가 위협받을 것이다. 기업도 고민이 크지만 정부도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D램이 약 20년 이상 독보적 입지를 누렸지만 이에 비해 장비·부품·소재 산업은 상당히 낙후했다. D램 제조사가 신기술을 개발하고 진입하는데 국내 파트너사가 아닌 해외 기업과 협업할 수밖에 없다. 선진 후방 기술을 해외 기업이 선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 장비·부품·소재 기업은 다른 반도체 경쟁사와도 협업한다. 한국기업의 노하우나 지적자산을 다른 국가나 기업에 넘겨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때문에 기술자산을 확보하고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장비·소재·부품 산업 육성 로드맵을 강력하게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중국이 언제 D램 기술을 확보하느냐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반도체도 결국 제조업인 만큼 언젠가 넘어간다. 장비·부품·소재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사회=대기업이 지나치게 협력사를 옭죄어서 해외 등으로 매출처 다변화를 못하게 만든 것이 국내 장비·부품·소재 산업이 낙후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허염(실리콘마이터스 대표)=중요한 부분이다. 협력사 기술을 메모리 기업이 내재화하는 게 경쟁력이 되고 차별화 요인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재화한 기술이 취약해지면 협력사와 반도체 기업 모두 약해지는 게 단점이다.
내재화할만한 기술과 아닌 것을 잘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특정 기술을 독식하는 게 무조건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세계 1등 수준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세계 1등이 가능한 부품과 기술은 직접 개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메모리반도체는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산업이다. 어떤 기술을 내재화해야 중국의 진입장벽을 더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내재할 수 있는 것은 더 지원해서 키우고 안 되는 것은 해외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략적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사회=중국은 결국 정부가 나섰기에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과 산업이 성장했다. 우리나라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염=메모리는 소자, 공정, 설계에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생산하는 수율 게임이다. 진입장벽이 높기에 돈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수율이 낮은 회사는 망하기 마련인데 중국은 정부 지원이 워낙 전폭적이어서 비용 개념 없이 제품을 생산한다. 지금까지의 시장 경쟁 가치가 달라지는 셈이다. 상당히 위협적이다.
중국이 생산설비 갖춰서 생산하면 가격이 폭락한다. 처음에 품질 낮은 제품을 생산하면 이에 맞는 저가 시장에 팔면 된다는 게 현지인들 생각이다. 실제로 중국은 제품 성능에 따른 시장 구분이 확실해서 어디든 팔 수 있는 구조다.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메모리를 생산해 가격이 폭락하는 게 앞으로 가장 큰 위협이다. 게임의 룰을 중국이 바꾸면 타격이 엄청날 것이다.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중국은 절대 죽지 않는다.
▲조중휘(인천대 교수)=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입 시기는 결국 국내 인재가 언제 유출되느냐의 문제에 달렸다. 인력이 유출되면 핵심 기술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디스플레이나 LED의 경우 공정 스텝수까지 적어 기술 수준을 바짝 쫓아오는 게 쉬웠다.
이에 비해 반도체는 공정 스텝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쉽게 쫓아오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두뇌 유출은 시작됐다. 국내 현실은 50대 초반에 퇴직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에서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면 이를 거절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수많은 각 공정 분야 전문가를 확보하고 조만간 저가형 메모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맞는 국가·산업 정책, 기업, 학교의 대응이 필요하다. 시점은 누구도 맞추기 힘들지만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한국을 앞지르는 2018년 이후 몇 년 뒤부터 중국 메모리 산업이 위협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임종성=장비·부품·소재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도 필요하다. 메모리는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국내 후방산업은 오랫동안 낙후했다. 구조적 문제가 너무 많다.
그 중 한 이유는 후방기업이 너무 대기업 그늘에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후방기업은 서로의 기술을 내재화하는데 전략적이어야 한다. 공정기술을 고도화하고 여기서 파생하는 기술을 면밀히 살펴 고유 지적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후방기업이 국내 반도체 기업에만 기술·제품을 공급해 서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조중휘=메모리는 고품질과 저품질로 시장이 나눠질 것이다. 한국이 고품질 고용량 시장을 갖고 저가형은 중국과 대만이 가져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중국이 뛰어든 만큼 전체 메모리 시장을 한국이 다 가질 수 없다.
국내 메모리 산업에서 절대적 문제는 ‘인재’ 확보다. 메모리 분야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 거의 끊겼다. 정부 스스로도 반도체 부문의 국가 연구개발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인재 확보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최근 국내 장비기업 AP시스템과 넥스틴이 합병했다. 대기업이나 정부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기업간 자발적 합의로 성사했다. 이런 사례가 더 늘어야 한다. 반도체산업협회에서 반도체펀드 만들어 인수합병 지원을 하지만 잘 안 된다. 국내 기업 정서 문제도 주효하다.
▲허염= 미국이 중국과 반도체 부문에서 협력하지만 무작정 첨단 기술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전략 차원이다.
14나노 핀펫의 경우 세계적으로 이 기술 제대로 확보한 곳은 삼성전자와 인텔뿐이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적극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가 앞서있으니 선행공정에 대한 특허권을 잘 갖추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인력양성 문제는 정말 중요하고 심각하다. 대학 연구비와 과제는 인재를 길러내는 토양이다. 대학에 정부과제와 연구비가 들어와야 학생들이 이 자원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발전한다. 이게 끊기니 돈이 있는 바이오 등 특정 분야로 빠져나갔다.
미래 산업 중요성도 봐야 하지만 현재 핵심 산업을 잃어버리면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기까지 20~30년이 걸린다. 현재 잘하는 것을 앞으로도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 절대로 잘하는 분야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정부도 후방기업 인수합병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 구체적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
▲김용래(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산업정책관)=정부가 고민하는 것은 ‘인력’이다. 인력유출과 새로운 인력 공급 문제가 절실하다.
지난해 국가 반도체 연구개발 사업을 바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업 예산의 절반을 내고 정부가 나머지 절반을 내서 인력을 양성하는 형태다. 정부 예산이 기업으로 가는 게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서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에 공급해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 지난 9월부터 디스플레이 부문도 같은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주요 메모리 연구 인력을 만나보니 은퇴하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더라. 그만큼 후배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중요하고 보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력유출 문제도 정부가 신경을 많이 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모두 전체 퇴직인력 중 10%만 관리하는 게 현실이다. 퇴직인력 활용 방안도 대학 인력육성만큼 고민해야 할 문제다.
후방기업의 대기업 종속 문제, 특히 장비기업의 종속성 문제는 장비·소자 연구개발 지원으로 해결하려 한다. 디스플레이는 70% 이상 국산화했는데 반도체는 아직 절반이 안 된다. 차세대 메모리로 시장 중심이 이동할 때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기업 특성상 고유 기술 노하우가 경쟁사로 빠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협력사 종속 구조를 갖고 싶어 한다. 때문에 KOTRA 같은 기관이 종합상사 역할을 해서 후방기업이 미국, 중국 등 해외를 먼저 공략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인력, 장비·소재 등 후방기업 지원과 육성 문제를 비롯해 인력유출 문제도 기업과 함께 더 깊이 고민할 것이다.
-사회=시스템반도체 산업 활성화도 구체적 방안이 절실하다.
▲허염=중소 팹리스 기업 인력이 모두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마이터스의 경우 일하는 의미, 분위기, 성취감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파워 아날로그 기술력을 갖춘 전문 인력이 많은 게 회사 경쟁력이다.
전 직원에 스톡옵션을 제공했는데 세금을 너무 많이 떼서 실제 개인이 받는 혜택이 얼마 안 된다. 좋은 인력을 유인하는 좋은 툴이 필요하다.
▲조중휘=대학의 시스템반도체 인력은 단순히 양성 차원을 넘어 기업이 요청하는 IP를 개발해 당장 신제품과 신기술에 접목해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자·공정 분야는 기업의 기술 수준이 높기 때문에 기업에서 일하기 위한 훈련 과정 일환이지만 시스템반도체는 당장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 기술을 대학에서 만들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치면 인력 훈련과 필요한 기술 개발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꼭 필요하다.
퇴직 인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다. 산학협력 교수 형태를 더 강화해야 한다. 많은 현업 전문가들이 인재 양성에 보람을 느낀다.
▲허염=상당히 중요하고 좋은 생각이다. 사물인터넷(IoT)은 스마트폰과 달리 여러 응용분야가 많다. 각 분야를 찾아내서 다품종 소량 체계를 만들면 시스템반도체 기업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대기업은 스마트폰처럼 표준화·정형화된 분야를 찾아 대량 생산하는 것을 선호한다. 사물인터넷처럼 다품종 소량 체계에는 진입이 힘들다.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반도체 기업간 인수합병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지금이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창업하기에도 좋은 시기다.
사물인터넷은 단일 칩 설계가 아니라 보안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SW)를 함께 공급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기존과 다른 시장 구도가 열린다.
창업 원하는 학생을 많이 접하는데 개발툴이 비싸 사용하기 어려워한다. 창업 준비생이 쉽게 툴을 사용하고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실제로 시제품을 보여주면 투자 유치시 훨씬 유리하다.
▲임종성=시스템반도체는 자동차,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 모두 접목할 수 있어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 메모리도 중요하지만 특히 시스템반도체는 새로운 관점에서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국민적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남기만=사물인터넷 시대의 시스템반도체는 양질의 고급인력 창출 효과가 상당히 높다. 경제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유망한 분야다. 충분한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소자본 창업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저성장, 낮은 성장잠재력, 고용창출력 부족 문제를 골고루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인프라다.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지원 프로그램 있지만 기존 팹리스 기업 대상일 뿐 순수 창업자나 학생을 위해 마음껏 설계하고 구동해볼 수 있는 지원 시설이 필요하다. 협회에서 ‘반도체창조기업혁신센터’를 구상해 추진 중이다. 현재 지역 기반 센터들이 있지만 기준을 지역이 아닌 ‘업종’으로 바꿔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중견·중소기업 인수합병 시장을 활성화해야 창업에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지원하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조중휘=기존 반도체설계지원센터(IDEC)에 창업 역할을 더하는 것은 어떨까. 기업과 정부가 함께 투자해서 연구개발을 산학협력 형태로 진행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발상을 전환하면 국내 파운드리와 힘을 합쳐 IDEC·창업·팹리스 활성화가 얼마든 가능하다. IDEC 내년도 예산이 상당히 줄었다. 정부가 적은 예산이라도 더 투자해야 한다.
반도체 후방산업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더 구체적으로 정하는 게 중요하다. 잘하는 분야에 우선 집중해야 ASML의 리소그래픽 장비 같은 독보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잘하는 분야를 우선 지키면서 점차 범위를 넓혀야 한다. 시스템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당장 지켜야 할 분야 경쟁력을 더 높이는 게 필요하다.
▲남기만=반도체 산업에서 정부와 기업이 할 역할은 산업을 더 키우고 경쟁력은 최대한 길게 유지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를 격려해 관심을 유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 팹리스와 메모리를 키우겠다는 정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관심과 지원이다.
정리=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