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국방과학연, 네트워크 장비 구매 규격에 시스코제품명 명시...불공정 행위 명확

공공기관이 특정 외산 네트워크 장비를 사업 입찰 규격에 못 박아 물의를 빚고 있다. 특정 제품 모델명을 규격서에 넣고 정정을 요청하는 산업계 요구에도 문구만 추가하는 등 문제 해결을 외면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는 지난 10월 대통령 경호실 LAN 설비 공사 규격에 특정 모델을 명시해 삭제 권고 요청을 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또는 동등 이상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제품`으로 규격서를 수정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는 지난 10월 대통령 경호실 LAN 설비 공사 규격에 특정 모델을 명시해 삭제 권고 요청을 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또는 동등 이상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제품`으로 규격서를 수정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 네트워크 장비 구매 입찰 공고에 시스코 등 특정 외산 제품 모델을 명시하는 공공기관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 조달입찰 공고 규칙과 기획재정부 예규에 어긋난다. 국산 네트워크 장비 역차별이며 특혜 시비로까지 번질 수 있다.

안산시 교통정보센터는 네트워크 장비 구입 입찰을 올렸다. L3광스위치·L2스위치 규격에 ‘WS-C3850-24S-S’ ‘WS-C2960C-8PC-L’을 명시했다. 모두 시스코 제품 모델명이다. 국방과학연구소도 네트워크 스위치 허브 규격에 ‘2960+24PC-L’ 등 시스코 모델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스코 등 특정 회사를 내세우는 사례도 많았지만 최근 논란을 피하기 위해 회사명을 빼고 모델명을 기입한다”며 “특정 외산 제품을 도입하려는 방식이 진화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에서는 규격에 맞는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 특정 모델명을 가이드라인처럼 제시했다고 반론했다. 안산시 관계자는 “현장 악조건에 강한 내구성을 가진 제품을 찾다 보니 특정 제품을 명시했다”며 “시스코와 기술 협약도 맺은 상태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방과학연구소도 제품 규격이 가장 적합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내기업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 계약 예규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물품 제조·구매 입찰 시 부당하게 특정 상표나 특정 규격, 모델을 지정해서는 안 된다. 안전행정부 예규도 입찰 공고나 설계서·규격서에서 특정 규격·모델·상표 등을 지정해 입찰에 부치거나 계약하는 것을 금지한다.

실제로 대통령 경호실은 ‘LAN 설비 공사’ 용역사업에서 워크그룹 스위치·백본스위치 등 구매 규격에 OS9700E-RCB-A 등 알카텔루슨트 제품 모델을 명시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서 특정 상표·규격·모델 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 받았다.

IITP는 “사전규격서 검토 결과 불공정 행위였으며 특정 상표, 규격, 모델을 명시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수용한다는 방침이지만 ‘또는 동등 이상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제품’으로 수정하는 정도다. 문구 하나만 삽입해 문제를 회피하겠다는 속셈이다. 특정 외산 제품을 규격서로 제시한 다른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는 “같은 성능과 규격을 가진 제품도 공급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며 “규격서상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업계는 벤치마크테스트(BMT) 등 기술 평가를 하지 않는 이상 명시된 제품이 아니면 사업에 참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국산 장비업체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하지만 특정 외산 제품 장비가 아니면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사실상 국산 제품을 들고 사업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업계는 공공시장이 정부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산 장비 수요를 늘리기 위해 신뢰성 향상 등 다양한 계획을 수립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시장은 국산 네트워크 장비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이라며 “민간보다 외산 장비를 선호하는 관행이 심하다”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