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오덕후’를 양산한 에반게리온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990년대 대표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한 에반게리온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최후의 에반게리온으로 예상되는 신 극장판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에반게리온 팬에게 20주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중간에 등장하는 ‘롱기누스 창’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는 잊지 못할 것이다.
롱기누스의 창은 ‘성창(聖槍)’으로 불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일이다.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다. 예수의 피가 스며들어 있다는 설화가 있다. 애니메이션 속 롱기누스는 생체 전투병기(정확한 표현이 아니지만) 에바가 사용하는 무기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아이템이다. 에바가 인류를 위협하는 괴생명체(이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사도’를 무찌르기 위해 붉은 롱기누스의 창을 던진다. 사도를 뚫고 창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 결국 달에 꽂힌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같지만 이 장면을 현실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의 하쿠토라는 팀이 실제로 롱기누스의 창을 만들어 달에 꽂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다.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쏜다는 대담한 구상과 최신 트렌드로 자리잡은 크라우드펀딩이 프로젝트 핵심이다.
프로젝트는 올해 4월 5일까지 1억엔(약 9억5000만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 프로젝트로 제작되는 롱기누스 창은 100m에 육박해 보이는 애니메이션 속 창과 다르다. 길이 24㎝ 무게 30g에 불과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포크를 달에 꽂는 민폐’라며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쿠토의 논리는 이렇다. 특정 물체를 달에 보내는데 1g당 1200달러 비용이 발생한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억엔을 모으면 약 600~700g을 수송할 수 있다. 롱기누스 창과 방출 기구를 달에 보내는데 펀딩 금액 대부분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참가자는 5000엔에서 1000만엔까지 펀딩할 수 있다.
로켓은 2016년 말 미국에서 무인 방식으로 발사될 예정이었다. 로켓이 연착륙하면 월면 페이로드 방출기구에서 롱기누스 창을 발사한다. 창이 달이 꽂히는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 며칠 뒤 지구에서 확인하는 계획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에 참가했지만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뿐 아니라 세계 1384명이 5469만5000엔을 펀딩했다. 목표 금액 절반이상이 모인 셈이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애니메이션 속 허상을 현실에서 구현한다는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강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