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창조적 루틴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창조적 루틴

아테네 올림픽. 16살 소년이 출발대에 섰다. 이어지는 아나운서 멘트. “박태환 선수 지금 실격처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처음 선 올림픽 무대, 세계적 선수와 경쟁. 긴장 탓에 준비신호를 출발신호로 착각하고 말았다.

긴장을 풀어야 한다. 나름대로 방법이 필요했다. 다소 큰 헤드폰을 쓴 채로 몸을 풀기 시작한다. 양팔을 크게 돌린 후 서로 교차시킨다. 스트레칭도 일정한 동작으로 한다. ‘박태환 루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골퍼들도 샷이나 퍼팅을 하기 전에 자기만의 준비동작이 있다. 긴장을 풀고 집중하기 위해서다. 특정 경험을 축적해서 비슷한 일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 그럼으로써 성과를 높이고 실수를 줄이는 과정을 ‘루틴(Routine)’이라 한다.

루틴은 개인은 물론 조직에도 있다. 일본 제약기업 ‘에이사이’사는 신약을 개발할 때 환자의 신체적 상황과 감정을 직원들이 체험한다. 이 과정에서 에이사이사의 유명한 ‘휴먼헬스케어HHC)’라는 비전이 실천된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사양으로 여러 시장에서 다양한 가격으로 경쟁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심장이 뛰도록’ 하는 제품은 아니다. “삼성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대신 기능을 개선하고 더욱 빠르게 다음 제품을 출시한다”고 평가받는다.

윤종용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수명이 짧은 모든 제품은 속도가 생명이다. 생선도 신선하지 않으면 가격은 떨어진다.” 삼성의 ‘루틴’이다. 이 성공 방정식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애플에는 DRI(Direct Responsible Individual)라는 자리가 있다.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떤 프로젝트든 DRI만 찾으면 담당자 파악에 문제가 없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포브스가 뽑은 글로벌 2000 기업 중 18위와 12위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름의 성공 양식이 있는 기업이다.

루틴에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일상적이고 지루한 것의 반복, 새로운 혁신과 탐색이 이뤄지지 못한 채 고착화한 관행과 습관 등을 말한다. 루틴은 성공 방정식인 동시에, 새로운 혁신을 막는 장애물이다.

비즈니스 세계는 하루가 다르다. 기술과 시장 변화를 외면하면 선두는 물론이고 시장을 내준다. 한때 기업가치 글로벌 4위 코닥, 워크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소니, 진공관 시대의 패자 RCA,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구가했던 노키아 역시 기존 루틴을 고집하다가 주저앉은 기업이다. 새로운 변화 앞에 이를 수용하고 개혁하는 루틴을 만들지 않으면 세계 1위도 별수 없다.

많은 기업이 시장과 기술 변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한다. 그들의 고민은 ‘어떻게 창의적이고 혁신에 유연한 기업이 될 수 있을까’다.

노나카 이쿠지로는 지식창조 과정을 ‘창조적 루틴(Creative routine)’이라 불렀다. 여기서 루틴은 변화가 없는 반복적 행위가 아니다. 암묵적 지식과 형식적 지식,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에서 모습을 바꾸며 확장되는 나선운동 과정이라 했다. 개인 지식은 구성원 사이에 공유된다. 공유된 암묵적 지식은 집단에서 형식화, 개념화된다. 이것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당화 과정을 거쳐 구체적 형태, 즉 원형이 된다. 그리고 집단, 조직을 거쳐 전사적으로 확산된다. 공유, 표출, 통합, 체득 과정을 거쳐 지식은 확장되고 반복된다.

어떤 방법이 자신의 조직에 맞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개인과 조직마다 차이가 있다. 정답은 없다. 혁신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과 지식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진부해진다. 기술과 지식을 체화하고 생산하는 주체인 인재도 영원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루틴’은 철학인 동시에 방법론이다. 기업 내부에 ‘루틴’을 갖는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노나카 교수의 지적은 창조적 루틴 조건을 예리하게 설명한다. 첫째로 목표와 임무가 명확해야 한다. 실행 과정은 자율적이고 자발적이라야 한다. 둘째, 구성원이 공유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셋째, 지식의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넷째, 무대의 경계는 있지만 확장 가능하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구성원의 열정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열정을 위해 공감과 이해, 믿음과 존중이 필요하다.

이제 회사와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속한 조직은 지금 창조적 루틴을 갖고 있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