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필자가 이 날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할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신설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미법계 제도다.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 민법이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점을 고려할 때 개정안은 우리 민사법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기억할 날짜가 하나 더 생긴 듯하다. 2015년 12월 2일.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규정됐다. 대리점법 국회 통과를 지켜보며 기시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대해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2011년 하도급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의원 입법안이 정무위 심사를 통과한 것은 3월 10일이었고, 다음날 오전 법사위를 거쳐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공정위는 일관되게 이 제도 도입을 반대했지만 이틀 만에 법 개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실무자로서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손해배상 적용범위를 더 확대했음에도 아직 소가 제기됐다거나 판결이 선고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법 위반 행위를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리점법도 국회의 신속한 처리는 마찬가지였다. 정무위원장 대안이 지난해 12월 2일 정무위에 상정됐고, 당일 저녁 법사위를 거친 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일부 언론 보도에 정무위 심사과정은 20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대리점 거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는지다. 속칭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폐해에 이미 공정거래법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조항이 규제하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남양유업 사건에서 공정거래법 제23조를 적용해 과징금 123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지만 과징금 산정 과정 일부 오류를 지적한 것이지 남양유업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거나 공정거래법 조항을 적용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아니었다.
공정위는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처럼 인력·조직 확대 계기가 될 수 있음에도 공정거래법 현행 규정으로도 규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대리점 특별법을 종전부터 반대했다. 공정위 논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일반법이 존재함에도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시민사회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특별법 제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자주 있었다. 특별법이 다수 제정되면 사실상 동일한 행위에 제재 불균형이 발생하고 법 체계 혼선이 야기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공정위가 특별법 대신 대리점 고시를 마련한지 불과 1년 만에 대리점법이 제정됐다. 대리점 고시 운영상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과연 새로운 입법이 타당한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법률 제정 타당성을 시행 이전에 판단하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와 법률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입법이 추진됐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이번 새로 제정된 대리점법으로 향후 대리점 거래에서 불공정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손계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kjson@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