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등록금을 내기 위해 거래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찾았지만 돈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날 펑펑 울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는 딸을 둔 한 어머니의 하소연이었다. 그녀는 20대 시절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휠체어가 없으면 바깥 세상은 그녀에게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결혼했고, 딸을 낳았다. 딸이 장성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아이의 첫 등록금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내고 싶었다. 그런데 발목을 잡은 건 뜻밖의 은행 문턱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발효됐지만 은행 지점은 여전히 장애인에게 높은 문턱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어렵게 거래 은행의 지점에 도착했지만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ATM에 들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ATM기기 부스는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으로 설치됐다. 설령 휠체어로 밀고 들어갔다 하더라도 휠체어에 앉아서 카드를 꽂을 수 있는 위치에 카드삽입구가 없는 등 장애인에게는 사각지대였다. 딸 등록금을 내고 싶어 한 그녀는 365일 자동화 코너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장애인을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금융 서비스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소리나는 ATM’도 시끄럽다는 이유로 이어폰 단자를 막아 놓기 일쑤고, 장애인을 위한 전용 ATM은 진입 자체가 힘들 정도로 배려가 없다. 몇 년 전 인천공항을 찾은 미국인은 IT 인프라는 최고지만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냉혹한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최근 정부에서 은행 창구를 찾지 않고도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 어쩌면 이 서비스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도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들에게 마음 편한 금융서비스를 마련해 주는 것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이다. 정부 또한 비대면 기반 금융서비스 창출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반영해 주길 기대한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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