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은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와 총 8조원 규모의 초대형 신약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한미약품은 이 같은 대박을 터뜨리게 된 비결로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uion·개방형 혁신)을 꼽았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업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아이디어를 적극 받아들여서 회사를 혁신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고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헨리 체스브로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2003년에 제시한 개념으로, 1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오픈이노베이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기존의 시장과 질서를 파괴하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제품 및 서비스는 모두 오픈이노베이션을 제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존의 폐쇄형 혁신이나 아웃소싱과 다른 개념이다. 폐쇄형 혁신은 기업 내부의 연구개발(R&D) 활동을 중시한다. 아웃소싱은 역량을 한쪽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반면에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기업 경계를 넘나든다. 이를 통해 보통의 기업 혁신을 뛰어넘게 한다.
한미약품은 2010년부터 외부연구개발(eR&D) 팀을 운영했다. 외부에서 들여와 시작된 R&D 결과물의 상품화 성공률은 사내에서 도맡는 방식보다 3배나 높을 정도로 오픈이노베이션이 성공했다. 구글 등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용, 혁신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술 융·복합화도 가속되는 추세여서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을 끌어내려면 오픈이노베이션이 이제 거의 필수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경영 환경이 복잡해지고 산업 간 구분이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모든 기업이 라이벌이자 동지가 된다. 구글과 애플이 자동차업체와 경쟁하고, 스마트폰업체가 디지털카메라나 PC업체와 경쟁 상대가 된다. 외부 아이디어와 기술을 활용해야만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개별 연구자나 한 기업의 단독으로만 진행하는 R&D로는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버클리대와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가 2012년 미국, 유럽의 기업 284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78%가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하이테크 기술 분야에서는 오픈이노베이션 추진 기업이 무려 91%에 달했다. 4년 전 조사인 만큼 지금은 이 수치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이 각광받는 이유는 기술 혁신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해진 데 원인이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처럼 혁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을 압도할 만한 기술을 기업 한 곳이 모두 감당하기엔 비용도 위험도 너무 커졌다. 플랫폼을 구축하고 연합군을 끌어들이는 것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구글이 대표 사례다. 2007년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를 선보였다. 수많은 하드웨어(HW) 파트너의 지지를 얻으며 탄생한 무료 오픈 소스 안드로이드는 기능도 기능이지만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OS였다. 결국 안드로이드는 모바일 소프트웨어(SW) 및 HW 혁신의 강력한 동력으로 떠올랐고, 수백여 제조사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개발자는 안드로이드를 통해 쉽게 더 많은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됐다.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사용자는 더 낮은 가격에 훨씬 더 좋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과 기기를 원하는 대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오픈이노베이션 효과를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누리게 된 것이다.
최근 인간과 바둑대결에서 압승을 거둔 AI 알파고도 오픈이노베이션 산물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라는 회사는 불과 2년 전에 구글이 인수한 회사다. 우수한 자원, 인재, 기술을 외부에서 공급 받았다. 구글이 혁신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오픈이노베이션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오픈이노베이션 선두 주자다. 테슬라는 2014년에 핵심 특허 기술을 세계에 공개, 오픈이노베이션을 시도했다. 보유한 특허권을 오픈 소스화해 기반산업 분야 R&D를 가속화하는 한편 연관 산업의 기업 간 전략 제휴를 확대했다. 배터리 공급업체인 일본 파나소닉과 공동 R&D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네바다주에 대규모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인 `기가 팩토리`를 짓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토요타 등 경쟁 기업과도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애플도 오픈이노베이션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의 새 장을 열었다. 애플은 아이폰을 PC처럼 다양한 앱 구현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콘텐츠업체와 SW업체의 수익 창출을 가능하게 했다. 수많은 콘텐츠 제작업체 및 앱 개발자와 함께 아이폰 생태계를 구축했으며,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도 만들었다.
최근 애플은 기업용 SW업체인 SAP와 기업 고객에 혁신형 모바일 업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아이폰·아이패드용 네이티브 앱과 SAP 플랫폼의 최첨단 기능을 통합할 예정이다. 애플은 혁신성과 보안성 높은 iOS를 비즈니스 SW 부문 전문성과 결합, 기업에서 아이폰·아이패드 사용 방법이 완전히 새로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오픈이노베이션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및 확대되고 있다. 기술 개발 단계뿐만 아니라 제품 기획부터 생산·마케팅까지 거의 비즈니스 전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공동 R&D, 지분 투자, 인수합병(M&A), 합작사 설립 같은 기존의 오픈이노베이션 유형에 꼭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사례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오픈이노베이션을 도입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도입 과정에 여러 변수가 많고, 애로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보유한 신기술이나 특허를 외부와 공유하면 경쟁사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우려는 오픈이노베이션 도입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수직 및 폐쇄형 조직문화일수록 오픈이노베이션 효과는 낮을 수밖에 없다. 해외보다 국내가 오픈 이노베이션 활용이 더딘 이유다. 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을 일시성 유행으로만 본다면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외부 전문가나 소비·사용자를 동업자로 여겨서 외부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활용해 생존과 발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대부분 플랫폼을 개방한 기업이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