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이 같은 구호를 활용, 백악관에 입성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 역시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소했다. 설득력이 강한 후보는 청와대 주인이 됐다. 패자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선이 열리는 해는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곤 했다. 국민과 기업의 시선이 현재에서 미래 권력으로 옮아가면서 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미 지속 가능한 정책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전 정권의 색깔이 지워질 것이라는 학습 효과다.
요즘 판교테크노밸리 인근의 선술집 화제 가운데 하나도 이것이다. 전국 주요 도시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 운명이 안주거리다. 차기 정부 거버넌스 문제에서부터 혁신센터 생존 가능성을 두고 소주잔이 오간다. 술잔 속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동일시된다. 한발 더 나아가 야권 부호가 집권한다면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현 정부와 공동운명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동물원 발언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 같은 논란에도 판교테크노밸리 내 스타트업 창업 열기는 뜨겁다. 아침 일찍부터 조찬회가 열리고, 밤늦게까지 불 밝힌 사무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핀테크부터 모바일게임, 헬스케어 등 분야도 다양하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가 선물해 준 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에 바탕을 둔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 기업도 아이디어 싸움이 한창이다. 누구나 과거보다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정치성 비판과 논란에도 현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유정`을 찾는 벤처기업에 오아시스와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혁명기에 새로운 스타가 되기 위한 기업들의 몸부림은 대단하다.
그동안 정권에 따라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 우선순위가 변해 왔다. 심지어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후순위로 밀려난 정책도 많았다. 5년마다 이 같은 현상은 되풀이됐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속 가능한 정책은 기대할 수 없다. 연립정부가 탄생하지 않는 한 슬픈 역사는 반복될 게 분명하다. 장기 성장 전략도 의미가 퇴색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그랬고 김대중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이 그러지 않았는가.
현실은 인정하자.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창조 콘텐츠와 문화 수출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5년, 10년 뒤에도 일관된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정책 철학이 필요하다. 혜택은 주되 개입하지 말아야 제2의 `강남스타일`이 빠른 시일 안에 탄생할 수 있다. 2년 전에 방한한 영국 사지드 자비드 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자국 창조문화 경쟁력을 언급하면서 이 같은 비결을 제시했다. 영국에서는 게임과 같은 창조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정부 간섭을 최소화한다. 정부 개입이 없는 것이 오히려 창조산업 부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내년은 대선의 해다. 역사상 우리 경제는 선거가 있는 시기에 힘들었다. 2017년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지금까지 성장을 뒷받침해 온 건설 경기마저 침체하고, 미국 금리 인상이 단행된다면 내수 침체는 불가피하다. 외풍과 정권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정책을 기대해 본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좋은 정책은 영원히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