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역 상대국의 부당한 조치에 적극 대응해야

[기고]교역 상대국의 부당한 조치에 적극 대응해야

지난 9월 26일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분쟁 해결 기구는 2013년 시작된 한·미 간 세탁기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분쟁에서 한국의 승소를 확인한 상소 기구의 판정문을 최종 채택했다. 1심에서 패소한 미국이 상소함에 따라 시작된 이번 상소심에서 WTO 상소 기구는 오히려 우리나라 주장을 더욱 폭넓게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측 승소를 더욱 확고히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한국산 세탁기에 부과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를 WTO 협정에 합치하도록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이번 분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우리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교역 상대국의 부당한 조치에 적극 대응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미국은 구매자, 지역, 기간별로 중대한 가격차가 발생하는 경우 WTO 협정상 예외로만 허용되는 표적덤핑 조치를 이례로 다수 적용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성과 LG에 적용한 미국 상무부의 표적덤핑 판단 기법이 WTO 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이 문제를 WTO에 처음 제소했다. 이 사건은 WTO에서 최초로 다뤄지는 표적덤핑 분쟁이라는 점 외에도 미국의 표적덤핑 판단 기법 자체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미국이 표적덤핑 판단 기법을 새로 도입함에 따라 여러 나라의 기업들이 비슷한 조치를 당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적극 문제 삼아 WTO 제소, 최종 승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둘째 우리 정부와 기업이 국제 통상협정을 활용해 우리 기업의 수출 여건을 개선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은 국제 통상협상 초기 단계부터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협상에 임하는 자국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을 하고, 체결된 국제 통상협정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국적 담배 기업들은 호주 정부가 자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담배 포장에 상표 표시를 금지토록 한 조치에 대해 호주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WTO에서도 우크라이나(절차 중단),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인도네시아 등이 호주 조치를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제소하고 다국적 담배 회사들은 제소국 소송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WTO 사상 가장 규모가 큰 분쟁인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민간항공기 분쟁은 미국 보잉사와 유럽 에어버스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쟁점이다. 10년 넘게 지속된 이 분쟁은 세계 시장에서 자국 업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활용한 대표 사례다.

우리나라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적극 활용하는 국가에 속한다. 보호무역주의가 증가하는 시점에 우리 정부와 기업은 WTO와 같은 국제 통상협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세탁기 분쟁은 우리 기업들도 국제 통상협정을 기업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현재 우리나라는 WTO 협정, 한·미, 한·EU 등 다양한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95개 투자보장협정(2016년 7월 현재) 등을 체결하고 우리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셋째 이번 한·미 간 세탁기 분쟁은 우리나라 법률 전문가들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과거 WTO 등 해외에서 이뤄지는 쟁송의 경우 외국 법률 전문가에 많이 의존했다. 해외에서 이뤄지는 쟁송이 특정 국가에서 이뤄진다면 해당 지역 법률 전문가가 주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WTO 분쟁 등 특정 국가의 관할이 아닌 국제 분쟁에서 우리 정부나 기업이 쟁송 당사자가 되는 경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 법률 전문가보다는 전문 지식을 갖춘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효과가 더 있을 것이다.

2013년 시작된 한·미 간 세탁기 분쟁에 대한 WTO의 판단은 우리나라 승소로 최종 마무리됐다. 이제 우리 정부와 기업은 미국이 WTO 협정에 합치하도록 조치를 개선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 시 이행 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WTO 분쟁 해결 절차는 패소국의 이행에 대해서도 다툴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정기창 법무법인 화우 외국변호사 kcchung@yoon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