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의 `동등결합 가이드라인` 발표가 임박하면서 통신방송 시장 지배력 전이 논란이 재점화됐다. KT와 LG유플러스는 유료방송 발전을 위한 동등결합 실효성 확보를 위해 SK텔레콤 재판매·위탁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은 두 회사가 고객 편익과 방송산업 발전을 외면한 채 자사 이익만 취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미래부는 케이블TV와 SK텔레콤 휴대폰을 결합상품으로 구성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동등결합` 세부 기준 초안을 완성했다.
미래부는 이번 주 초안을 케이블TV 사업자와 공유,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미래부는 연말 또는 내년 초 SK텔레콤과 케이블TV 사업자가 상품을 구성해서 출시하기 전에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이 케이블TV 초고속·유료방송 상품을 판매하려면,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 유선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SK텔레콤이 지닌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이 유선시장으로 옮겨갈 위험을 줄인 후에야 새로운 상품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SK텔레콤 재판매와 위탁판매는 합법이다. 동등결합은 유료방송 활성화를 위한 보완재 성격이다. 재판매·위탁판매 금지는 시장구조를 변화시키는 거대 통신·방송 정책 차원의 문제다.
미래부 관계자는 “동등결합 가이드라인 초안에 케이블TV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라면서 “그러나 SK텔레콤 재판매·위탁판매 금지는 현 단계에서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매와 위탁판매 `합법`
통신방송상품 재판매와 위탁판매가 현행법 상 합법이라는 데는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 간 이견이 없다.
`재판매`는 사업경영 주체가 다른 상품을 도매로 구입해 마케팅비 집행 등 대부분 영업활동이 가능한 판매 방식이다. 지난 2010년 전기통신사업법 제38조에 `별정통신사업자` 근거가 마련된 이후,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 초고속인터넷, 유선전화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위탁판매는 마케팅비 투입이 금지되고, 단순 판매 대행만 가능한 판매 방식이다. SK텔레콤은 IPTV법에 따른 방송판매 면허가 없어, SK브로드밴드 방송 상품을 위탁판매만 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LG유플러스가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에 대한 재판매를 넘어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이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고발한 적도 있지만, 당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재판매·위탁판매 금지 논란 재발
한동안 가라앉았던 재판매·위탁판매 금지 논란은 미래부가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미래부는 상반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무산된 이후, 케이블 TV 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을 높이는 차원에서 `동등결합`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했다.
케이블TV사는 휴대폰 상품이 없어 결합상품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으므로, SK텔레콤을 휴대폰 의무제공사업자로 지정해 완결된 통신방송상품을 구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SK텔레콤에도 케이블TV사 상품을 결합상품을 구성해 지원하도록 했다.
미래부가 동등결합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돌입하자, KT·LG유플러스 진영은 SK텔레콤에 대한 위탁판매·재판매 금지를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 상품을 판매하는데 대한 제재가 없으면 케이블TV 상품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케이블TV 위기의 근본 원인이 SK텔레콤이 이동통신시장점유율 49%를 앞세워 SK브로드밴드와 유선 결합상품을 구성, 유통망과 자금력을 동원해 시장 장악에 나섰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KT와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결합상품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전이시키는 데 대한 규제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자사 가입자에 대해서만 통신·방송 재판매 규제를 통해 융합상품을 판매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소비자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옥수수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공동으로 제공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유선시장 1위 KT가 2위 SK텔레콤의 재판매와 위탁판매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규제를 통한 경쟁자 죽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래부, 동등결합 가이드라인과 지배력 문제는 `별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KT·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논쟁과 별개로, 미래부는 동등결합 문제와 재판매·위탁판매 금지는 완전 별건이라는 입장이다. 유료방송시장 활성화를 위해 고심한 동등결합 가이드라인이 통신사 논쟁에 가로막힐까 우려한다.
동등결합은 지난 2008년 전기통신사업법에 `금지행위의 유형과 기준에 대한 세부기준` 조항으로 근거가 마련됐지만 사문화돼 있었다. 미래부는 세부 기준과 보완 장치를 만들어 시장에서 실제 작동하도록 연구했다. 재판매·위탁판매 문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미래부 관계자는 “현재 동등결합 가이드라인은 초안이 완성 됐으며, 재판매·위탁판매 금지 문제는 가이드라인에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매와 위탁판매, 시장지배력전이를 둘러싼 논쟁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통신·방송정책 전반으로 풀어야할 문제이지 유료방송 시장에 대한 보완 정책인 가이드라인으로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공정거래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상 합법인 재판매와 위탁판매를 금지하기 위해서도 법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동등결합 가이드라인에 `집중`해야
재판매와 위탁판매 금지는 정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신방송 시장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정책 전환으로 손꼽힌다. 미래부가 동등결합 가이드라인이라는 보완책을 만들고 있는 만큼, 지금은 동등결합 실효성을 높이는데 논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동등결합 실효성을 높일 방안으로 △SK텔레콤 유통망에서 케이블TV 동등결합 상품 판매 강화 △케이블TV와 IPTV 판매 수수료 동일하게 지급 △일정 비율 이상 케이블TV 동등결합 판매 의무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동등결합은 케이블TV사의 휴대폰 상품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근본 정책 목적”이라며 “지금은 본질적 논의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