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하만 인수···일본 자동차 업계에 `충격`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가 일본 자동차 완성차 메이커와 부품업체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관련 분야에서 또다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인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성 장관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산업분야”라면서 “산업 전반에 동맹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낙오 재연 우려

일본은 산업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고 낙오한 경험이 있다. 일본은 한때 휴대폰 제조를 선도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시장흐름을 읽지 못해 애플과 삼성에 시장을 내줬다. 반도체 메이커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동차 산업도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다. 전체 일본 수출 중 자동차와 관련 부품 비중은 20%에 달한다. 일본경제의 운명은 자동차와 전자산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고서에서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계속 생산해내야 한다. 만약 일본이 플랫폼을 장악한 글로벌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면 가치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이 자율주행차 등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데 1억95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불안감 때문이다.

◇M&A 등으로 각자 살길 찾아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인수합병으로 살길을 찾고 있다.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는 지난 9월 자동차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반도체 회사 인터실을 32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르네사스는 민관합동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대주주로 있다.

세코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이 자율주행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정부 지분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구글과 같은 공룡과 경쟁하려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서 쓴 맛을 본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다. 파나소닉은 현재 자동차와 관련 시스템에서 매출의 3분의 1을 기록하고 있다. 차량용 전기배터리는 테슬라 모터스에 공급 중이다. 파나소닉은 최근 카미러를 대체할 비디오모니터링시스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차량 부품 개발사도 인수했다.

토요타는 앞으로 자율주행차에 약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2020년에는 자율주행차가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나카타 마사토 토요타 엔지니어는 “자율주행기술이 토요타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자동차 산업이 반도체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자료:월스트리트저널)
일본은 자동차 산업이 반도체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자료:월스트리트저널)

◇커넥티드카 주도권 상실 우려

일본은 커넥티드카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삼성과 하만이 관련 분야에서 힘을 합치면서 두려움은 더 높아졌다.

하만은 올해초 “앞으로 반(半) 자율주행차, 궁극적으로 완전자율주행차를 가능하게 하는 커넥티트카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야심을 밝힌 바 있다.

토요타도 이달초 2020년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모든 토요타차를 인터넷에 연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토모야마 시게키 토요타 커넥티드카 부문장은 이와 관련, “토요타가 차량공유 분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제조업체는 플랫폼 공급업체가 되야 한다. 차는 결국 정보 터미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발전은 토요타·닛산·혼다 등 일본 자동차 메이커에 비즈니스모델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닛산의 자율주행기술 `프로파일럿`은 미국 TRW의 카메라와 이스라엘 모빌아이의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닛산 대변인은 “최고의 기술을 적용할 것이며 기존 공급업체와 관계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나카타 토요타 엔지니어는 “일본 자동차 회사는 자기만족적이고 잘 아는 회사와 일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