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총칭하는 무역 장벽은 1948년 무역과 관세에 대한 일반협정(GATT) 설립으로 국제 규범화되기 시작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더욱 정교해졌다. 무역 장벽은 관세와 수량 규제 등과 같이 국제 규범화가 용이한 것도 있지만 속성상 국제 규범화가 쉽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비관세 장벽은 무역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원칙만 정해 둘 수밖에 없다.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무역기술장벽(TBT) 협정이다. TBT 협정은 각 회원국의 기술표준 설정을 허용하되 시험검사, 인증제도, 각종 규격 등을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국제표준이나 적합성 평가 관행을 따르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점검하기 위해 각국이 채택하는 기술 규제 관련 사항을 WTO TBT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WTO TBT위원회 활동만으로 신규 기술 규제 도입에 따른 각국의 이견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다자무역체제 아래의 TBT 활동 못지않게 양자 간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체결한 15개 자유무역협정(FTA) 가운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및 콜롬비아를 제외한 모든 양자 간 FTA에서 TBT 챕터를 설치, 기술 규정으로 인한 무역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를 구축했다.
이런 와중에 내년 세계 경제 성장 전망은 밝지 않고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대통령 선거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세계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올해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를 3.1%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제 성장의 불안 요인으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정책 불확실성 및 정치 불안, 브렉시트와 유럽 통합 약화, 선진국 경기 침체 장기화, 기업 부채 부담으로 인한 신흥국 시장 불안 등이 제시됐다.
경제 악화와 정치 포퓰리즘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기술 규제가 무역 장벽으로 될 수 있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될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20년대 말 대공황기, 1970년대 오일쇼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 보호무역주의는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늘어난다. 또 한 국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는 주요 교역 상대국에 이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보호무역주의가 무역 보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교, 국방은 물론 기존의 경제 통상 정책을 뒤엎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내년 세계 경제는 IMF 전망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미국 국익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통상 정책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은 크게 지역무역협정 폐기 및 재협상, 강력한 통상 체제 구축, 대중국 통상 정책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지난 9월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동결을 선언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 국익 우선주의 아래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제조업 부활을 위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이며, 무역 구제 조치가 유효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는 기술 규제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짙다. 자동차·가전 등 부문에서 미국 기술표준과 배치되는 국가에 대해서는 미국 통상법과 경쟁법 등을 동원, 무역 제재에 나설 수 있다.
대선 기간의 공약으로 보면 트럼프는 전통 제조업 보호에 우선순위를 뒀다. 집권 청사진에서는 중장기의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신산업 기술표준 선점에 나설 수 있다.
기술 규제 분야는 산업 정책과 통상 정책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대표 분야다. 특히 트럼프 시대의 기술 규제 대응을 위해서는 기존 국가기술표준원 업무에 통상 관련 역량을 배가시켜야 한다. 국내 산업계와의 소통과 더불어 국제 공조를 위한 협력 체제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inkyo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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