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이나 제품이 등장해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고 사람의 생활이나 생각하는 방식마저 바꿔버리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부분적으로는 스마트폰이 이같은 일을 해냈다. 양자(量子·Quantum)는 그만한 일을 해내고도 남을 정도의 혁명적 잠재력을 보유했다. 1900년 막스 플랑크의 양자물리학 발견 이후 100여년을 숨죽여 지내온 양자정보기술이 마침내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발전했다. 2017년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것인지 혹은 휩쓸릴지를 우리 손으로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해다.
◇혁명 중의 혁명 `양자 혁명`
양자정보기술은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를 가지는 입자`로 정의하는 양자의 중첩·얽힘·복제 불가능성 등 고유 특성을 정보통신기술(ICT)에 접목한 것이다. 양자정보통신, 양자컴퓨팅, 양자소자·부품 등 응용이 가능하다.
양자정보기술이 제4차 산업혁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압도적 영향력 때문이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양자컴퓨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기존 ICT 산업 근간 가운데 하나인 `공개키 암호체계(RSA)`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RSA 알고리즘은 슈퍼컴퓨터로도 수천 년이 걸리는 어려운 수학문제에 의존하는데, 양자 고유 특성인 중첩과 얽힘을 이용해 초고속 병렬연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는 이 문제를 단 몇 시간이면 풀 수 있다. 캐나다 디웨이브와 미국 IBM, 구글 등은 초기 단계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했다.
흥미로운 것은 양자컴퓨터의 거센 도전을 막아낼 수 있는 게 양자정보통신이라는 점이다. 양자정보기술이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양자정보통신은 양자 고유 특성을 이용, 암호 해독을 위한 비밀 키를 안전하게 전송하는 암호통신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양자물리학 법칙이 무너지지 않는 한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세계는 소리 없는 `양자 전쟁`
양자정보기술이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엉뚱한 정치적 사건이 계기였다. 이론이나 실험실 차원에서 이뤄지던 양자정보기술 연구가 2013년 미국 `스노든 사태` 이후 도청 차단을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중국은 2014년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2000㎞ 규모 양자정보통신 기간망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말까지 완공한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첫 양자통신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알리바바, 화웨이 등 중국 ICT 대기업도 양자정보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중국에 자극받은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은 양자 부문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퀀텀유럽(Quantum Europe·Qurope)이라는 공동협력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유럽연합은 지난해 3월 새로운 중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 `퀀텀 매니페스토`를 발표했다. 2018년부터 10년간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를 양자정보기술에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2009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발표한 미국은 산학연 연계방식을 통해 매년 1조원가량을 양자 연구에 쏟아붓는다. 매년 공개하던 기술개발 로드맵을 2012년 이후 비공개로 전환하는 등 양자기술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도 양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 양자산업 명운 걸린 2017년
2017년은 한국 양자정보기술 산업이 후발주자로 영원히 뒤처지느냐, 지금이라도 선진국을 추격하느냐를 가를 명운이 걸린 해다. 우리나라와 선진국 양자컴퓨터 기술격차는 7.6년(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추정)으로, 전혀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느 국가나 기업도 아직 정보통신기술을 온전히 상용화하지 못한 만큼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
이은권 의원(새누리당)은 지난달 12일 양자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ICT 관련 법만 가지고는 빠르게 발전하는 양자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차례 무산된 양자특별법 국회 통과가 최대 현안이다. 상반기 결정 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 국책과제도 중요하다. 2018년부터 8년간 5500억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SK텔레콤 등 오랫동안 양자정보기술에 투자한 기업이 결실을 거둘지도 주목된다.
<양자정보기술 세계시장 전망(단위:억원) 자료:마켓리서치 미디어(2016. 2) *양자정보통신, 양자컴퓨팅, 양자소자·부품 시장 합산 >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