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차량 호출 업체인 우버는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볼보 XC 90 자율주행차량을 투입,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곧바로 이 서비스를 허가받지 않은 불법 서비스로 규정, 즉시 중단을 명령했다. 우버는 “운전자가 동승하기 때문에 완전 자율주행차가 아니다”면서 “주행 허가 신청도 필요없다”고 맞섰다. 양자 간 신경전은 결국 캘리포니아주 당국의 승리로 끝났다.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시범 운행되고 있는 16대의 우버 자율주행차량 등록을 취소, 우버가 손을 들었다. 우버는 캘리포니아주 대신 애리조나주에서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7일 미국 아마존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메이저 업체로는 처음으로 드론 상업 운항을 시작했다. 케임브리지 주민은 자신의 태블릿 PC로 TV 셋톱박스와 팝콘 한 봉지를 주문했고, 주문 13분 뒤 드론은 물건을 배송지 집 뒷마당에 정확히 내려놓았다.
블룸버그통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팝콘으로 아마존의 드론 배달 서비스 역사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미국 기업 아마존이 왜 영국에서 첫 상용 서비스를 했을까. 바로 규제 때문이다. 아마존은 규제를 피해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두 사례는 법·제도가 정보기술(IT)의 빠른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대표 사례다. IT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상품·서비스가 나오면 기존의 법 체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기술 진화로 기존의 산업 영역을 파괴하는 신기술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을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이는 기술 상용화 지연으로 나타난다.
규제가 한 나라 산업을 망친 사례는 19세기 영국의 자동차 규제 법안 `적기 조례`(Red Flag Act)가 대표한다. 당시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자 빅토리아 여왕은 자동차 최고 속도를 시속 6.4㎞로 제한했다. 시내에선 시속 3.2㎞로 묶였다. 속도가 제한되면서 영국 자동차 산업은 혁신에서 뒤지고 말았다. 결국 자동차 산업 주도권은 규제가 약한 독일로 넘어갔다. 독일이 자동차 강국이 되고, 자동차 부문에서 일자리가 폭증하게 된 것은 신기술 창출을 막은 영국의 규제 덕분이었다.
규제 밑바탕에는 시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하는 기존 사업자의 반발이 있다. 적기 조례 제정의 배경에도 자동차에 일감을 뺏길 것을 우려한 마부가 있었다. 현재도 이런 갈등은 있다. 차량 호출 서비스 우버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경우 기존의 택시업계와 숙박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기존 사업자의 반발도 타당성이 있다. 택시영업 면허가 없는 운전자가 자가용 승용차 또는 렌터카로 영업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영업 행위를 한다면 면허가 있는 택시기사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도 사실이다. 면허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에어비앤비도 우버와 비슷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시설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며, 세금도 안 내면서 숙박업을 한다는 것이다.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나눠 써서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자는 것이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의 취지다. 여기에 이익 추구가 개입되면 그 취지가 바래진다는 주장이다.
안전이나 정보 보호 문제도 신기술 및 신경제의 걸림돌이다.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는 여전히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행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당국으로서는 시민 안전과 공정 거래 등이 필요,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각국 정부가 엄격한 드론 운항 규정을 마련하고 운전자 없는 완전자율주행차 허용에 소극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미국 교통부 산하 연방항공청(FAA)은 드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상업용 드론 운항 규정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원래 9·11테러 같은 드론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규제 완화를 거부했다. 그러나 중국의 약진에 놀란 미국은 운항 규정을 고쳐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드론 조종 면허를 딸 수 있고, 낮 시간에 상업용 드론을 운항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FAA 규정에는 조종사들이 드론을 직접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시야선 확보` 의무화가 포함됐다. 아마존이 미국 대신 영국에서 첫 드론 배송 상업화를 시작한 이유다. 아마존은 미국 정부에 드론 배달 허가를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국도 결국 드론 배달을 허용하겠지만 1~2년 안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정보 보호도 규제의 핵심 이유다. 페이스북 등 글로벌 사업자에게 개인정보 통합과 정보의 국경 이동은 필수다. 모든 정보를 통합해서 가공하면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 수익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러한 통합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낳는다. 페이스북이 자회사 왓츠 애플리케이션(앱)의 이용자 개인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밝힌 이후 사생활 보호 및 공정 거래 위반이라는 비난이 미국과 유럽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다.
규제로 인한 혁신 지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핵심 이슈다. 4차 산업혁명은 IT와 기존 산업을 융합,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융합 기술 제품은 말 그대로 다른 카테고리 신기술이 융합돼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에 따라서 융합 신기술 제품은 기존의 품목 분류 체계로는 올바르게 파악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기존 산업과 충돌하거나 안전 문제, 개인정보 유출 문제 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도미닉 바턴 매킨지앤드컴퍼니 회장이 “정부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융합형 신산업 육성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고 민·관이 협업하는 규제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통 산업 시대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규제를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