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 개봉 2주 만에 3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배급사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해 재미를 더한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에곤 쉴레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그의 단 하나의 사랑으로 알려진 발리 노이질을 포함, 그에게 영감을 준 네 명의 뮤즈와의 스토리를 통해 그린 작품이다.
◇ 비하인드1. 걸작 탄생의 원동력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
영화 속 에곤 쉴레는 도발적이고 과격한 터치로 적나라하게 인체를 표현, 금기를 깨고 죽음과 에로티시즘이 결합한 충격적이고 매혹적인 작품들을 남긴다. 이러한 에곤 쉴레의 화풍은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도 명문인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 입학을 할 정도로 타고난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어린 시절에 형성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난 에곤 쉴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매독에 걸려 모든 집안 소유물과 재산 증서를 아궁이에 던져 태워버리는 등 광적인 행동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 또한 아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그만큼 에곤 쉴레는 그의 여동생 게르티 쉴레에게 더욱 애정을 쏟으며 그녀를 뮤즈로 삼은 다양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에곤 쉴레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그가 예술에만 몰아치게 한 원동력으로 미술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 비하인드2. 에곤 쉴레가 작품명을 바꾸는 명장면에 숨겨진 비밀
걸작으로 평가 받는 에곤 쉴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죽음과 소녀(Tod und Mädchen, 1915)’는 에곤 쉴레가 그의 모델이자 유일한 사랑으로 알려진 발리 노이질을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그녀와의 사랑이 끝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 작품은 1918년 3월에 열린 제49회 제체시온(빈 분리파) 전시회에서 공개된 작품으로 처음에는 ‘남자와 소녀(Mann und Mädchen)’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으나, 이후 그림이 Munchner Sezession (Munich art society)에 팔리면서 ‘죽음과 소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발리의 사망 소식을 들은 에곤 쉴레가 전시 카달로그 속 작품명을 [남자와 소녀]에서 [죽음과 소녀]로 일일이 바꾸는 장면은 영화의 원작 도서 작가에 의한 픽션이다. 작품명이 바뀐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탄생한 장면이다.
◇ 비하인드3. 에곤 쉴레는 누드 인물화만 그렸다?
28세의 나이에 요절한에곤 쉴레가 남긴 3,000점이 넘는 드로잉과 300점 이상의 페인팅은 그가 짧은 생애 동안 오로지 창작에 미친 듯이 에너지를 쏟았음을 반증한다. 에곤 쉴레는 독특한 인물화로 유럽 화단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지금도 특히 자화상과 뮤즈들을 그린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손꼽히지만, 풍경화 또한 많은 걸작을 남겼다. 도발적이고 에로틱한 인물화와 다르게 따스하고 정겨운 도시 풍경화도 즐겨 그렸던 에곤 쉴레는 체코의 크루마우(현 체스키 크룸로프)를 담아낸 ‘소도시II(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의 풍경)’ ‘네 그루의 나무들’ 등 낭만 가득한 유럽을 그려냈다. 또한 에곤 쉴레를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에까지 이르게 한 그림들은 실제로 어린아이들을 나체로 그린 것이 아니며 잠든 아이들의 모습과 다른 그림에서 가져온 성인 신체를 합체해 재구성했다는 것이 미술학계의 의견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