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 소재·부품 등 후방산업의 생태계는 투자 위축 직격탄을 맞을까 불안감에 휩싸였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일반 사업 부문은 중단기로 큰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 건은 보류되거나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보류가 현실화하면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1차 협력사는 물론 2차, 3차 협력사 실적이 도미노처럼 꺾일 수 있다.
복수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 건설·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이미 결정이 내려진 투자는 계획대로 가겠지만 신규 투자 계획 수립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컨대 평택 반도체 공장 가동 건은 올해 계획이 다 세워진 상태기 때문에 투자가 지연될 우려는 적다. 그러나 신규 프로젝트는 미뤄질 공산이 크다. 당초 삼성은 중국 시안 제2차 공장 건설 여부와 방법, 일정에 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의 대규모 투자가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후발 주자와 초격차 유지를 위한 추가 투자는 미뤄질 가능성이 짙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협력사는 진행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아직은 `악영향 가능성` 정도지만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때를 대비, 대책 마련에 분주한 협력사도 있다.
협력사가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은 불확실성이다. 이미 지난해 말 정기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가 미뤄지면서 협력사 시계는 흐려졌다. 한 협력사 대표는 “떠날 사람, 올 사람, 남을 사람이 분명치 않은 상황이어서 전반에 걸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협력사도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영업과 신규 제품 개발 활동을 적극 전개하기가 어정쩡한 형국”이라고 전했다.
정기 인사 지연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여전히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직을 겸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수의 경영 공백으로 경영 향방은 더욱 불확실해졌다는 것이 삼성 협력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협력사 대표는 “최태원 SK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SK하이닉스의 10년 장기 투자 계획이 공식 발표됐다”면서 “이 같은 계획 발표 하나로도 협력사는 단기 자재 구매 계획부터 중장기 기술 개발과 생산 가동 계획을 원활하게 짤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 공백으로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 삼성 부품 사업의 경쟁력 역시 저하될 우려가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은 미래 시장을 면밀하게 예측한 뒤 과감하게 이뤄지는 적기 투자 결정이 앞 다퉈 작용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톱 지위에 오른 것도 총수 중심으로 이뤄진 과감한 결정 덕이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19일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비상 체제를 가동한다 하더라도 조 단위의 거대 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투자 결정을 독단으로 내릴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분야 경쟁력 약화는 물론 삼성과 거래하는 협력사 실적 저하로 이어져 전체 내수 경기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