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한 사회 제도와 조건으로 공정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불공정과 불균형을 가리킬 때 곧잘 인용된다.
어떤 분야든 기울어진 운동장 개선에 공감하면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정치든 경제든 기득권 세력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평편한 운동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에 다수가 공감한다.
여야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저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다수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기울어진 운동장 개선에 대한 공감은 성취를 위한 노력과 무관하게 사회 요소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현상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정상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절망감도 작용한 듯하다. 한때 유행한 금수저·흙수저, 헬조선 등 양극화와 불평등을 꼬집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득권 세력을 제외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불가능한 공정 경쟁과 균등한 기회가 평편한 운동장에서 가능해진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왜 문제인가. 공정한 승부 의식과 기회 균등을 저해하고 불합리를 확대·재생산한다. 격차가 커지고 격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비하는 게 마땅하다.
방송통신 결합상품 분야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처방이 가해졌다. 이동통신과 케이블TV 초고속인터넷을 묶은 동등결합상품이 출시됐다. 케이블TV 사업자는 방송통신 결합상품 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했다. 이동통신 결합상품 부재로 애초에 유효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통사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달 28일부터 케이블TV 사업자가 이동통신을 묶은 동동결합상품을 출시, 운동장 기울기가 일부 조정됐다. 그렇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완벽하게 평편한 운동장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한탄과 정부의 역할, 법·제도 지원을 기대하는 희망은 여전하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방송통신 결합상품의 기울기가 여전한 운동장을 평편하게 만들기 위한 진단과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 평편한 운동장을 위해 어느 지점의 기울기를 조정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어느 지점의 기울기가 전체 운동장 기울기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실마리는 케이블TV 사업자에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와 냉소주의는 떨쳐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케이블TV의 분발이 아쉬운 게 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편하게 되더라도 이통사와 유효 경쟁을 할 만한 기초 체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케이블TV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할 게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케이블TV가 알고 있는데 실천을 안 하는 것인지,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지 궁금하다.
김원배 통신방송부 데스크 adolfkim@etnews.com
![[데스크라인]기울어진 운동장](https://img.etnews.com/photonews/1703/929805_20170306155518_056_000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