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2년 9개월에 구축한 `글로벌 ERP`가 연간 14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은 생산, 물류, 구매, 재고, 재무, 영업 등 기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저장 공유해 의사결정을 돕는 툴이다. ERP만 제대로 구축해도 물류, 재고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 알 수 있다. 하이닉스가 비용 절감에 성공할 수 있게 된 비법을 분석해 본다.
SK하이닉스가 SK그룹으로 편입되기 이전인 하이닉스반도체 시절에 법인별 ERP 시스템은 7개로 분리돼 운영했다.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 본사와 충북 청주 사업장, 중국 우시와 충칭 생산법인, 세계 각국 11개 판매 법인을 두고 있다.
시스템 분리 운영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본사와 해외 판매법인 간에 일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직원은 근무지를 바꿀 때마다 ERP시스템 적응 교육을 따로 받아야 했고, 모두가 다른 화면을 보면서 주요 업무를 본 탓에 가시성도 떨어졌다. 데이터 정합성이 낮은 것은 큰 문제였다. 예컨대 한국에선 `메모리`라 쓰고 미국에선 `Memory`라 기재했기 때문에 중앙 취합 때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만져야만 했다. 주인 없던 시절에 되는대로 그때그때 ERP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상당히 큰 비효율을 야기한 것이었다.
◇SK 편입 후 통합 글로벌ERP 구축 시작
2012년 2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SK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역량을 집중시켰다. 1단계로 2013년 1월부터 본사와 미국 판매 법인을 대상으로 글로벌 ERP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독일 SAP와 협력했다. 이 작업은 2014년 6월까지 18개월 동안 진행됐다. 2단계 구축 작업은 중국 우시 전 공정 생산 법인과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11개 판매 법인이 대상이었다. 2015년 2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시스템을 구축했다. 3단계는 중국 충칭 후 공정 생산 법인과 국내 3개 자회사를 대상으로 2015년 3~9월 약 7개월 동안 시스템을 구축했다. 글로벌 ERP 구축에만 총 2년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13일 “변화에 대한 우려와 불편함, 자재와 장비의 기존 정보 정비 등 많은 장애 요인이 있었으나 업무별 협의체와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 700명이 넘는 인력이 적극 협업한 결과 성공리에 글로벌 ERP를 구축할 수 있었다”면서 “이를 통해 최적화된 운영 프로세스를 구축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ERP 구축과 동시에 표준 업무 프로세스를 773개에서 498개로 줄였다. 일을 더 효율 높게, 더 빨리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법인별로 `메모리` 또는 `Memory`로 상이하게 기재하던 기존의 정보 체계를 손봐 데이터 정합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약 200만건 기준의 정보 체계를 수립, `소통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ERP를 활용하는 약 8000명의 직원 교육도 병행됐다.
◇연간 재고비용 1400억원 절감
SK하이닉스는 2015년 9월부터 지금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글로벌 ERP를 운용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이제는 모두가 동일한 화면을 보면서 표준화된 프로세스로 일을 하게 됐다.
가장 큰 성과를 본 영역은 제조 기술 분야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ERP 구축 후 제조 라인에서 분산 운영되는 현장 창고가 240여개로 난잡하게 흩어져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창고는 1개로 통합했다. 분산된 창고를 통합하자 자재 출고와 배송 시간이 50분에서 25분으로 단축됐다. 현장에서 자재를 관리하던 인력은 559명에서 51명으로 줄었다. 실시간으로 업무 처리가 가능한 모바일 자재 출고 시스템도 구축, 안정된 창고 운영 체계 효율화를 수립했다. 이를 통해 출하를 요청했다가 반납된 미사용 자재 사용을 적극 독려, 최소한의 `안전 재고` 수량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연간 약 1400억원의 재고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SK하이닉스의 설명이다.
16개로 분산 운영되던 서로 다른 장비의 유지보수 시스템은 하나로 통합됐다. 기존의 정보도 표준화했다. 이를 통해 정기 실시되는 장비 예방보수(PM) 체계를 효율화했다. PM은 반도체 전 공정 장비의 챔버 내에 남아 있는 가스 찌꺼기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PM 작업을 할 때 장비 가동이 멈춘다. 너무 잦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PM 작업이 너무 늦어지면 공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통합 운영 관리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장비별 정비 이력, 소요 자재 등 실시간 분석이 가능한 분석 체계를 다각도로 구축한 결과 공정 사고 예방과 품질 향상 효과를 보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장비 총 소요비용(TCO)을 절감할 수 있었다”면서 “이 같은 장비 TCO 분석 체계 구축으로 구매 협상력이 강화되고, 국산화 발굴을 통해 장비와 재료 구매 원가도 크게 낮췄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