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매출 성장률 32%”
에릭 쉬 화웨이 최고경영자(CEO)가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다. 세계적으로 통신·네트워크 장비 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화웨이는 독주하고 있다.
화웨이는 정확한 매출을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성장률을 단순 계산해도 5200억위안(약 760억달러)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등 컨슈머 사업을 제외한 통신·네트워크 장비 매출은 약 3400억위안(496억달러)으로 추정된다. 30% 수준의 성장률이다.
세계 통신·네트워크 장비 1위 기업 시스코 매출이 지난해 487억달러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화웨이 통신·네트워크 장비 매출이 시스코에 육박하거나 근소한 차로 앞서게 된다. 중국의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웨이가 시장 판도를 바꿔놓는 순간이다.
◇화웨이와 경쟁 체제로
화웨이 '굴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그룹은 지난 해 상반기 세계 무선접속망(RAN)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화웨이를 지목했다. 화웨이가 30%, 에릭슨 28%, 노키아 24%라고 평가했다.
화웨이가 통신 장비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배경은 유·무선 통합 솔루션 포트폴리오다. 화웨이는 유선 통신과 무선 통신 장비를 모두 갖춘 기업이다. 무선 강자였던 노키아가 2015년 유선 통신 장비업체 알카텔루슨트를 합병하기 이전에는 화웨이가 유일했다. 노키아의 알카텔루슨트 인수합병(M&A), 시스코(유선)가 에릭슨(무선)과 통신 장비 사업에 대해 전방위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도 화웨이를 의식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화웨이와 경쟁할 수 있는 '총알'을 잰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 시장에서 유선과 무선 네트워크 융합이 이뤄지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시장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무선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처럼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다.
중국 대표 ICT 기업이란 점도 화웨이가 몸집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정부 지원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안방으로 삼았다. 화웨이가 발표한 지역별 매출(2015년 기준) 규모 가운데 42% 정도가 중국 시장이다. 전년대비 54% 이상 성장한 시장으로, 화웨이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갈수록 커지는 영향력
국내에서도 화웨이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모두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의존도가 가장 높다.
통신사에 들어간 화웨이 장비는 대부분 '코어(백본)망' 용도다. 코어망은 기간 통신망 핵심 영역으로 가격이 비싸고, 트래픽을 수용·처리하는 용량도 가장 크다. 재설정식광분기(ROADM)라 불리는 광전송장비가 대표적이다. 통신 3사 모두에 화웨이 ROADM 장비가 공급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사가 한 장비 회사 제품만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핵심 영역에 자리잡아 다른 영역으로 확산 가능성이 높다. 유선통신장비 관계자는 “화웨이가 국내 통신사를 상대로 5G 무선망 장비를 공급하기 위해 AU·CU·중계기 등 전체 장비 라인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화웨이 장비의 점유율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망을 준비하는 통신사에 화웨이는 매력적이다. 광 전송과 회선, 패킷 전달망을 통합해 네트워크 구조를 단순화하고 트래픽 폭증을 해결할 수 있는 광회선패킷통합전달망장비(POTN)는 통신 3사가 모두 도입 준비 중인 장비다.
지난해 KT가 POTN망 업그레이드 시범 사업을 진행할 때 화웨이 장비를 선택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코어망에도 화웨이 POTN 장비를 일부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신 시장 뿐만 아니라 기업·기관 네트워크 영역에서도 화웨이 입지는 탄탄하다. 화웨이는 한국전력을 필두로 국내 공공 시장까지 손을 뻗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 신규 시장 개척도
KT와 LG유플러스가 협대역 사물인터넷(NB-IoT) 전국망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와 협력해 NB-IoT 모듈 10만개를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이 로라 방식으로 IoT 전국망을 먼저 구축했지만 향후 NB-IoT의 추격이 매서워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기존 롱텀에벌루션(LTE) 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어 통신사에는 이점이다.
IoT 시장에서도 화웨이 의존도는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급성장이 기대되는 NB-IoT 기술 자체가 화웨이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NB-IoT는 2014년 5월 화웨이와 보다폰이 기존 GSM망에서 IoT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한 'NB-M2M' 기술에서 시작했다. 이후 퀄컴 NB-OFDM과 연합, NB-CIoT가 결성됐다. 2015년 9월 에릭슨의 NB-LTE와 공동으로 3GPP에서 규격화하기로 결정했다. NB-IoT 뿌리가 화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웨이는 NB-IoT용 칩셋도 자체 개발, 공급 채비를 마쳤다.
소프트웨어(SW)로 네트워크를 제어, 관리하는 SDN 시장에서도 화웨이 도약이 예상된다. 화웨이는 지난해 SDN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확보,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C) 사업에도 화웨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2~3년 이후로 예상한 화웨이의 SDN 공세가 빨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