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진료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 선두에 가천대 길병원이 있다.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미국 IBM사의 AI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해 AI암센터를 개소, 이미 250여명의 암 환자를 진료했다.
AI진료 시대를 주도한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기반 정밀의료추진단장을 만났다. AI 진료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길병원 본관 1층 왼편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 암센터는 전용 라운지, 다학제 진료실, 코디네이터실 등으로 배치했다. 다학제 진료실에는 긴 의자가 삼각형으로 놓여 있고, 정면 벽에 대형 모니터가 3개 걸려 있었다. 환자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의료진이 앉는 구조였다. 밝고 아늑해서 잘 꾸민 작은 세미나실에 온 느낌이 들었다.
이 단장은 국내 의료계에 두 가지를 가장 먼저 도입한 주역이다. 하나는 AI진료를 국내에 도입, 의료계에 일대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일이다. 다른 하나는 길병원 기획실장 시절에 국내 병원 가운데 가장 먼저 전사자원관리(ERP)를 도입, 업무 혁신을 추진했다. 의료업계는 이런 이 단장을 이상가 또는 혁신가, 이단아로 부르기도 한다.
-모든 암을 다 진료하는가.
▲아니다. 이곳은 현재 전체 암의 65%를 진료한다. 올해 말이면 85%, 오는 2020년이면 100% 진료가 가능하다. 현재는 폐암,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위암, 난소암, 자궁경부암 등이다. 지금은 글로벌 의료 리더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AI 도입에 반대는 없었나.
▲처음 AI 도입을 제안하자 내부 반응이 별로였다. 일부에서 “AI진료가 말이 되느냐”는 거부감이 있었다. 원래 의료계가 보수적이다. 하지만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I와 인간의 동행은 불가피한 추세다. 미래 세상은 시대정신과 가치로 발전한다고 판단했다. 시대 변화를 리드해야 살아남고, 미래는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견에 찬성하고 최종 결단한 분이 이길여 재단이사장(가천대 총장)이다. 이사장께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AI를 의료에 도입하기는 불가능했다.
-언제부터 도입을 준비했나.
▲2014년 세계 최고 수준의 암 진료 기관인 미국 메모리얼슬론케터링암센터(MSKCC)에서 임상 결과를 임상암학회에 발표한 내용을 보고 우리도 AI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미국 IBM과 2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그해 12월 암센터를 개소해 암환자 진료를 시작했다.
-왓슨 암센터 시스템과 의료진 현황은.
▲시설은 왓슨 전용 라운지, 다학제 진료실, 코디네이터실 등이다. 왓슨 암센터는 AI 슈퍼컴퓨터 왓슨을 기반으로 8개 전문 진료과와 30여명의 전문의, 전문코디네이터가 함께 일한다. 전문의는 병리과, 내과, 핵의학과, 영상의학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혈액종양내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다.
-암센터 전담 직원은.
▲왓슨 코디네이터 2명뿐이다. 단장인 나를 비롯해 나머지는 겸직이다. 자기 일을 하다가 다학제 진료일이 정해지면 모인다.
-그동안의 진료 현황은.
▲지난해 12월 AI진료를 시작한 이후 250여명이 암 진료를 받았다. 갈수록 환자가 늘고 있다.
-진료 절차는.
▲이곳은 암환자만 진료한다. 센터나 길병원으로 전화해서 예약하면 된다. 우선 전문코디네이터와 자세한 상담을 하고 난 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예약을 한다. 해당 과에서 주치의가 정해지면 주치의가 환자 나이, 성별, 진단명, 검사 결과 같은 정보를 왓슨 포 올콜로지에 입력한다. 이때 환자한테 정보 입력 동의서를 받는다. 왓슨은 이런 정보를 토대로 미국 MSKCC의 전문 지식 데이터와 방대한 문헌을 참고, 환자 상태에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제안한다. 왓슨은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과 치료 방법, 치료약, 추천하는 약까지 제안한다. 주치의는 자신의 의견과 왓슨의 제안, 다학제 결과를 종합해 최상의 맞춤형 진료 계획을 수립한다.
이 단장이 인터뷰 도중에 모니터로 보여 준 한 암환자의 경우 치료 기간, 치료 방법, 치료약, 생존율, 부작용 등 왓슨이 제안한 치료 방법과 근거들이 소상히 나와 있었다.
-진료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다학제 진료실은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함께 들어가서 대형 화면을 보며 치료 방법을 찾는다. 자료를 요약해서 환자에게 제공하는 데 약 10분 걸린다. 환자가 질문하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20분 이내다. 다학제 진료는 현재 일주일에 두 번 한다. 의료진을 같은 시간대에 불러 모으는 일이 가장 어렵다. 의료진마다 담당 환자가 있고, 진료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다학제 진료비는 얼마인가.
▲다학제 진료비는 저렴하다. 왓슨 사용비는 현재 무료다. 4인 다학제 환자의 부담은 5800원, 5인 다학제 환자는 7300원이다.
-AI진료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진료를 받은 환자 대상으로 내부에서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10점 만점에 9.4점이 나왔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다수 의료진과 AI가 환자 상태를 검증,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 의사의 경우 진료 대기 시간이 꽤 길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AI 진료는 시간이 길어야 20분이니 얼마나 편한가. 왓슨은 현재 290종의 의학저널과 전문 문헌, 200여종의 교과서, 1200만쪽에 이르는 전문 자료를 학습한 상태다.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장점은 환자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특히 오진율을 줄일 수 있다. 왓슨에 어마어마한 자료가 쌓여 있다. 각종 문헌도 리뷰할 수 있다. 그동안 의료진에 불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암 판정을 받고 나면 다른 병원에 가서 재진단을 받는다. 돈과 시간낭비다. 일본에서는 환자가 이곳저곳을 다닌다고 해서 '암 낭인(浪人)'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암센터에서 다학제 진료를 받으면 오류를 줄이고 최상의 맞춤형 처방과 진료비를 줄일 수 있다. 단점은 환자에게는 없다. 의료진에게는 부담이란 점이 단점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보수적이어서 관행이나 경험을 우선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이론은 그렇지만 실제 해보니 이렇다'고 하면 의사끼리는 그게 통했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그런 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그런 질문이 많다. 당연히 의사 책임이다. AI는 의사면허증이 없다. 왓슨은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 방법을 제안할 뿐이다. 최종 판단은 의사가 한다. 훗날 AI에 의사면허증을 발급하면 그런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우다. 왓슨은 의료용 첨단 프로그램이다.
-환자 데이터는 어디에다 보관하는가.
▲미국 IBM 본사에 보관한다. 우리는 필요한 자료를 불러와 사용한다. 클라우드 방식이다. 우리가 자체 데이터 시설을 갖추려면 엄청난 투자비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다.
-어느 나라가 AI 선진국인가.
▲미국이다. 미국은 2012년부터 적용했다. 중국은 최근 AI 도입 병원이 50여개로 늘었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 5개 병원이 AI를 도입했다. 앞으로 국산 AI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야 한다. 그동안 AI 도입 후 외부에서 '국민 정보를 제공하고 돈까지 주느냐'는 식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AI 엑소브레인을 개발하고 있다.
-해킹 위험성은 없는가.
▲IBM의 보안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욱이 왓슨에 환자 주민등록 같은 개인 정보는 입력하지 않는다. 최근 정부에서 개인정보 미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제시, AI를 활용한 개인 정보 침해 발생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규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포지티브 규제다. 이걸 네거티브로 변경해야 한다.
병원도 앞으로 AI와 빅데이터 기반 병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의료 혁신은 이제 시작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어릴 적에 외가에서 자랐다. 그때 외조부님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만하되 교만하지 마라'다. 그게 좌우명이다. '나 아니면 이 일을 못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일을 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하다 보면 교만해진다.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이 단장은 한양대 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과장과 교수, 길병원 기획조정실장·기획부원장·진료부원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앙심사위원과 대한정위기능신경외과 학회장, 제9회 세계신경조절학회 조직위원장, 대한노인신경외과학회장 등을 지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