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단타 매매 집중에 거래 규모 수조원... 투기판된 가상화폐 거래소

[이슈분석]단타 매매 집중에 거래 규모 수조원... 투기판된 가상화폐 거래소

가상화폐 광풍에 사실상 손 놓고 있던 금융 당국이 결국 투자 과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과 함께 투자 주의를 안내했다.

뚜렷한 법 지위도 없고 실질 결제 기능도 제한된 가상화폐. 어떤 관리 감독이나 규제 장치가 하나도 없는 사이에 국내에서만 하루 수조원대 거래가 이뤄지는 거대한 투기판이 형성됐다.

'어느 나라 정부가 제도권 편입을 준비한다' '글로벌 대기업이 기술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 하나에도 시세 급등락을 반복한다. 허위 정보 제재는 물론 투자자 보호 장치도 미흡, 정보에 어두운 개인 투자자는 손해 보기 십상이다. 한탕 대박을 노리는 막대한 자금 유입과 함께 거래소 운영 체계의 허점을 노린 국내외 보이스피싱 범죄자, 해커까지 밀려들면서 가상화폐 시장의 안정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분석 전문 업체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세계 비트코인 시가 총액은 451억5000만달러(약 51조원), 이더리움은 302억5000만달러(약 34조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700종이 넘는 가상화폐가 사이버 상에서 거래되며 제2의 비트코인 '대박'을 노리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판 키운 비트코인, 기름 부은 이더리움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의 시세 차트에 따르면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초 1BTC당 100만원대 아래로 거래됐다. 그러나 5월을 기점으로 급등하기 시작, 한때 400만원선을 돌파했다. 50만~60만원대를 유지하던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1년 만에 가치가 6~7배로 치솟은 셈이다.

세계 비트코인 시장에서 한국 원화 거래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18% 정도다. 미국(36.7%), 일본(21.6%)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중국 위안화는 한때 전체 거래량의 90%가 집중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금 유출, 탈세, 돈세탁 등을 막기 위해 거래소 대상의 강력한 규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올해 비트코인 가격 급등은 4월 일본의 자금결제법 개정이 촉발시켰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제도권 지급 결제 수단으로 인정될 가능성에 기대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이어 언론 보도를 통해 비트코인 가치 급등으로 수십, 수백배의 이익을 거뒀다는 해외 사례 등이 확대·재생산되면서 투기 수요가 몰렸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면서 거래 가격은 폭등했다. 해외 거래소에 비해 국내 거래소 시세가 30% 이상 높게 프리미엄이 붙어 형성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이수정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국제 자금 결제 증가와 정보통신기술(ICT) 성장은 가상통화의 사용 빈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가치 급등락은 투기 버블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이 가상화폐 시장의 판을 만들고 키웠다면 이더리움은 국내 투기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5월 삼성SDS 등이 글로벌 블록 체인 연합체인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얼라이언스(EEA)'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올해 초 1만원대 초반을 유지하던 이더리움의 국내 시세는 현재 40만원대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후 중국 블록 체인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글로벌 기업이 EEA 추가 참여를 발표한다는 낭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하루에도 10만원씩 시세가 급등락, 단타 매매 수요가 집중됐다. 거래량에서도 한국 원화 비중이 28.34%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단일 통화로는 미국 달러화, 중국 위안화를 제치고 가장 크다.

은행권 국제 송금에 특화된 '리플'도 국내 거래소에서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시세 변동 폭이 작아 장기 투자를 위한 일부 수요 외에는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분위기다.

◇돈 몰리는데…보안·안정성 불안한 거래소

국내 이용자는 대부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구입하고 거래하기 위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이용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거래소에서 취급하는 각 가상화폐에 대한 전자지갑을 제공한다. 업체 측에 입금한 예치금으로 주식을 사고 팔 듯 거래를 진행하는 식이다.

각종 감독 규정 아래에 놓인 자본시장과 달리 별도의 장 시작·마감 시간이나 상·하한가 제한이 없다. 동시에 거래소 측에서 자체 마련한 것 외에는 별다른 투자자 보호 장치도 없다.

수백억원대의 현금성 자금이 유입되고 있어도 금융사 등에 비해 보안 관리 체계는 미흡한 편이다. 국내에서도 올해 중소 규모의 비트코인 거래소가 해킹, 55억원에 이르는 고객 자산이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객 자산의 무단 송금이나 수익률 정보 조작 등이 발생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소규모 거래소 난립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평판과 신뢰성이 검증된 대형 거래소를 이용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거래량을 자랑하는 빗썸과 데프콘 등 세계 해킹 대회 입상 경력의 보안 전문가가 설립한 코인원, 국내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로 알려진 코빗 등이 꼽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 거래소 이용자를 노린 거래소 사칭 보이스피싱과 아이디·비밀번호 탈취, 해킹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불안감이 커졌다. 투명성 감사 보고서 공개, 에스크로 서비스 적용, 2단계 인증 장치 지원 등 신뢰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 금융사 등에 비해 미흡할 수밖에 없다. 거래량이 폭증하면 사이트가 마비돼 정상 거래가 어려워지는 등 시스템 안정성도 문제다.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화폐에 대한 사회 관심 증가로 이용자가 예상을 넘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면서 “서버 증설과 소프트웨어(SW) 최적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추가 안전 장치 마련, 보안 강화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