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퇴진이 삼성 그룹 전반의 쇄신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엄중하고 어려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영 일선에서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권 부회장 메시지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용퇴를 선언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상황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향후 쇄신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주요 계열사 인사 수요까지 종합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계열사는 독립 경영이 원칙이지만 계열사 간 승진 등 인사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 퇴진도 최근 인사 검토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그룹 전반에 걸친 인사 개편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 퇴진을 발표해야 후임 인선 등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특히 권 부회장이 사퇴 메시지에서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4차산업혁명과 중국의 성장, 미국의 견제 등 산적한 미래 대응에 있어 후배 경영진이 대거 전진 배치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연말 인사 폭도 상당할 전망이다.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권 부회장 메시지처럼 '뉴 삼성'을 실현하기 위한 초유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 실적을 낸 권 부회장이 물러나는데 다른 사장과 계열사 CEO도 인적 쇄신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고 경영진이 대거 교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로 연기됐던 사장단 인사까지 반영하면 대대적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0년 전 퇴진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퇴진 시점, 상황, 메시지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조직 구조 자체의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 윤 부회장이 2008년 대표이사 부회장직을 내려 놓았을 때, 삼성전자는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에 연루,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처럼 '총수 공백'에 빠진 상황이었다. 당시 윤 전 부회장과 직책뿐만 아니라 여러 대표 이사 가운데 최고 연장자였다는 것도 같다. 2008년 당시 윤 전 부회장 퇴진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부터 물러나야 한다는 취지의 용단”이라는 삼성전자 설명처럼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물러났다는 것도 유사하다. 윤 전 부회장 퇴진 다음해인 2009년 1월 삼성전자는 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반도체·LCD 등 4개 사업 총괄 체제에서 DMC·DS 등 2개 부문 체제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권 부회장과 함께 IT·모바일 부문과 소비자가전 부문이 각자 대표를 맡는 현 3각 체제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재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물러난 것은 삼성 쇄신에 본인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면서 “제대로 혁신하자는 메시지를 줬기 때문에 후속 인사는 태풍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