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04> 쿠라나 이야기

쿠라나(Curana)는 3대에 걸친 가족 기업이다. 1940년 즈음 벨기에 아르도이에서 시작됐다. 50년 동안 자전거 흙받이나 짐받이를 만들었다. 1990년 중반이 되자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최고경영자(CEO) 디르크 벤스는 비즈니스 모형을 바꾸기로 한다. 그리고 10년 만에 가치사슬의 정점에 선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도 오랫동안 변한 것이 없는 가족 기업에.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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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반하베르베커 벨기에 하셀트대 교수가 들려주는 사례들은 놀랍다. 퀼트 오브 덴마크는 2000년에 설립됐다. 이 즈음 가격 경쟁에 지쳐 가고 있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건강한 수면'을 미션으로 삼는다. 건강한 수면이란 무엇일까.

코펜하겐대 글로스트뤼프 병원에서 찾은 해답은 온도였다. 체온을 쾌적 범위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땅한 기술이 없었다. 우연히 잡지에서 상변화물질(phase change material)이란 것을 알게 된다. 주로 건물 단열에 쓰였다. 재료는 유연성이 없다. 매우 작은 마이크로캡슐 안에 상변화물질을 넣어 직물에 붙여 보았다. 템프라콘이란 브랜드는 지금 기능성 침구 시장을 대표한다.

쿠라나도 비슷하다. 벤스에게 혁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디자인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근처 디자인랩 필리필리에 의뢰했다. 반짝이는 알루미늄에 컬러 플라스틱이 붙은 디자인은 미끈했다. 성형이 쉽지 않았다. 안지플라스트라는 기업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렇게 출시한 비라이트는 대성공이었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가졌고 이윤은 늘었지만 여전히 무게중심은 제조사에 있었다. 다시 혁신하기로 한다. 자체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고 제조사별로 맞춤 디자인을 제안했다.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고 새로운 재료를 사용, 새로운 액세서리를 만드는데 치중했다. '쿠라나 방식'이란 뜻의 ByC는 최상의 혁신 브랜드가 됐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04> 쿠라나 이야기

두 사례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기술은 중요한 요소다. 자전거 부품이나 퀼트가 하이테크 산업은 아니다. 그러나 두 기업이 찾은 해결 기술은 산업 평균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둘째 고객의 가치 제안에서 시작했다. 퀼트 오브 덴마크에는 건강한 수면이 있고, 쿠라나는 자전거가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 준다고 했다. 쉽지 않았지만 구현됐을 때 지극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셋째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전형의 기업이었다. 비라이트 성공으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옮겨 갔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시 제조업자전략관리(OSM), 또다시 제조업자브랜드관리(OBM) 전략으로 넘어간다. 경쟁 기업이 모방할 수 없었다.

넷째 개방형 방식이다. 쿠라나뿐만이 아니다. 아이소바이오닉의 경우 연구는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생산·발효·정제·포장은 동유럽과 인도, 마케팅과 물류는 모기업 DSM에서 각각 처리한다.

반하베르베커 교수는 중소기업을 위한 최선의 전략은 '깨어나라(Wake up)! 개방하라(Open up)!'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그가 여러 소기업의 성공담을 나열한 것도 어쩌면 이 탓인 듯하다. 쿠라나조차 깨어나는데 50년이 걸린 셈 아니었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