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이세돌과 겨룬 알파고를 보면서 대중은 일자리 상실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산업화 세대에게 '일'이란 생계 유지 수단을 넘어 삶 그 자체였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현재도 일이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젊은이들의 구직난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4차 산업혁명 도래로 언론, 의료, 법조와 같은 전문 영역까지도 인공지능(AI)의 인간 대체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역시 전통의 노동이 자동화로 대체되었거나 변화를 앞두고 있다. 손으로 옮기던 웨이퍼의 이동은 이미 천장물류이동장치(OHT)가 대신하고 있다. 육안으로 확인하던 공정과 장비의 이상 징후 대응은 스마트팹이 대신한다. 이로 인해 신규 생산 현장을 방문한 외부인은 3만3000㎡(약 1만평)이 넘는 대규모 클린룸 안에 몇 명 되지 않는 작업자를 보고 놀라곤 한다.
이런 편의가 이뤄졌다고 해서 생산의 어려움이 덜해진 것은 아니다. 공정 난이도는 미세화가 진행되는 동안 오히려 기하급수로 높아졌다. 단순 노동은 첨단 장비로 대체될 수 있지만 생성된 데이터 활용, 우회 기술 개발 등 새로운 기술 장벽을 넘어서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이 때문에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 일과 노동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0년 초반 8만명에 불과하던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는 15년 이후 2배 이상 성장, 약 17만명이 종사하는 산업으로 발전했다. 필자가 종사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도 비슷한 시기에 1만여명 남짓하던 국내 재직자가 현재 2만4000여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취업 경기 전반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반도체 기업들이 체감하는 고용 온도는 식을 기미가 없다. 반도체 기업의 인사 부서는 인재 모시기와 더불어 자사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는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단일 기업에서 매년 1000명이 넘는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분야는 반도체를 포함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국민 최우선 고용 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조차 정보기술(IT) 엔지니어에게 만큼은 취업문을 열어 두고 있으며, 투자 공세로 자국 인재 양성과 더불어 세계 IT 인재를 빨아들이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첨단 산업에서 고급 노동력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오늘날 기술 혁신, 예컨대 1나노 선폭 미세화조차 에디슨처럼 뛰어난 천재 한 둘이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진 혁신을 완성하기 위해 소재서부터 공정과 장비 등 각 회사의 수많은 엔지니어, 마케터, 경영자들이 생태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협업과 경쟁을 통해 연결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산업 생태계 선순환 조성을 위해 발족한 상생발전위원회 역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반도체는 일자리, 그것도 '질 좋은' 일자리를 지속해서 창출하는 산업이다.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의와 도전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이 거대하고 복잡한 경쟁의 핵심은 민·관·학이 지혜를 모아 얼마나 뛰어난 인력을 확보하고 육성하는가의 문제로 수렴될 것이다. 그것이 '반도체 코리아'에 있는 경쟁력이자 해결해야 할 숙제다.
박성욱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