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당신이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무엇인가. 경기장 안팎에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웅이 탄생했지만 필자는 개막식과 폐막식 때 선보인 무인비행장치 드론 퍼포먼스가 기억에 남는다. 1000대가 훨씬 넘는 드론이 허공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오륜기를 표현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컴퓨터그래픽을 보는 것 같다”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드론 쇼 기반 기술을 외국 기업이 제공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드론 쇼가 평창에서 성사된 데에는 해당 기업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기술 파트너로서 2024년까지 후원 협약을 맺은 것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우리 기술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다.
우리나라도 드론 기술 개발에 일찌감치 나선 바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12년 활주로가 따로 필요 없는 수직 이착륙 무인기를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확보했다. 2013년에는 군집비행(여러 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무리 지어 비행하는 형태) 기술을 개발, 이듬해 민간 기업에 이전하기도 했다. 다만 후속 기술 개발에 필요한 추가 투자, 규제 완화 등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 까닭에 기술을 상용화해서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로 내놓는 데에는 실패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GDP 대비 4.24%, 2016년 기준)를 자랑하고, 손꼽히는 기술 혁신을 다수 이뤄 왔으면서도 정작 상용화 성과를 내는 데에는 한발 늦는 이유는 무엇일까. R&D 성공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이후 단계, 즉 '기술 사업화'에 관심을 덜 쏟았기 때문이다. 실제 19조원이 넘는 정부 전체 R&D 예산 가운데 기술 이전과 사업화 부문 예산은 약 4000억원 안팎으로, 전체 2% 남짓에 불과하다. 증가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더 이상 기술사업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은 혁신 기술보다 혁신 비즈니스모델(BM)이 더 중요한 시대다. R&D를 할 때도 기획할 때부터 기술 트렌드나 시장 상황 변화를 반영하고, 향후 비즈니스 모델까지 고려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신속한 사업화는 더욱 중요해졌다. 여기에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 자녀인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가 노동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2016년에 328만명인 25~29세 청년이 2021년에는 367만명으로 급증하는 등 청년 세대 고용 한파 극복이 사회 과제로 떠올랐다. 고용 창출 파급 효과가 높은 신산업 육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정부 기술 이전 사업화 촉진 계획을 수립하는 기관으로, 중소·중견기업 기술 사업화에 필요한 지원책을 제공한다. 기업이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사업화 속도를 높이는 것만이 기업을 빠르게 성장시켜서 경제 전체 고용 여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필요한 기술을 도입하거나 추가 기술 개발에 들어갈 사업화 자금을 찾는 기업이라면 KIAT 도움을 받으면 된다. 기업 기술사업화 애로가 해소되면 정부 국정 과제인 혁신 성장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다.
기술 자체만으로는 큰 부가 가치 창출이 어렵지만 '사업화'라는 물을 주고 시장에서 잘 클 수 있도록 키워 준다면 기업 성장, 일자리 창출이라는 열매도 맺게 할 수 있다. 기술 사업화가 일으키는 마법과도 같은 효과다. 혁신 기술이 사업화를 거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마법이 중소·중견기업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hakdokim@kiat.or.kr
-
양종석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