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지난 20년간 수출과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국가 핵심 산업이다. 2017년 단일 품목 최초로 연간 수출액이 900억달러를 돌파한 수출 1위 품목이 바로 반도체다. 생산 점유율은 21.5%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현재 국내 반도체 분야 일자리는 16만5000개에 달한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반도체 분야 일자리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일자리 감소가 국가 차원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분야는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산업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력 대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양사가 전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60%에 이른다. 최근 수출액 증가, 점유율 증가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최근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쉽게 따라잡힐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만에 하나 중국 경쟁력이 의미 있는 수준까지 올라온다면 반도체도 액정표시장치(LCD)나 발광다이오드(LED)처럼 극심한 공급과잉과 가격하락 상황에 맞닥들일 수도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 가격담합을 이유로 국내 반도체 기업을 옥죄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 논리에 맞지 않게 '값을 내리라'고 윽박지르다 안 되니 담합 조사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메모리는 수입을 막으면 자국 완성품 사업이 무너지니 실력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라면서 “대안이 마련되면 배터리처럼 노골적으로 보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한국 경쟁력은 미미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로 대표되는 국내 팹리스 업계의 점유율은 지난해 3%에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팹리스 업계의 매출 규모는 2006억위안(약 32조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22% 성장한 수치다. 올해도 약 20% 고성장이 예상돼 전체 매출 규모가 2407억위안(39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중국 팹리스 업계의 매출액 격차는 20배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도체 장비 분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이 3.5%에 그쳤다. 원천기술이 없어 일본 업체에 기술료를 내는 장비 업체도 있다. 대부분 장비 업체는 핵심 부품을 수입해서 쓴다.
반도체 예산이 점진적으로 깎이면서 관련 분야 교수나 석박사 인력 배출도 크게 줄었다. 서울대의 경우 2005년 반도체 전공 석박사 졸업자가 106명이었지만 2014년에는 절반 이하인 42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학계의 관계자는 “반도체는 대기업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정부 R&D가 줄어들면서 연구인력 배출이 크게 감소했다”면서 “기업은 인력을 찾지 못해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