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중저가 스마트폰 사업을 강화한다. 프리미엄폰 집중 전략을 바꿔 중보급형 제품도 주력 모델로 키운다. 스마트폰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프리미엄'과 '보급형' 쌍두마차 전략으로 복귀했다. 보급형 시장에서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산 중저가 스마트폰 돌풍을 잠재우겠다는 포석도 깔렸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지난달 이례적으로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9일 삼성전자와 부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무선사업부 구미 사업장에서 글로벌 생산과 기술을 책임지던 박길재 부사장(제품기술팀장)이 지난 6월 1일자로 수원 무선사업부 본사 개발실 산하 글로벌 하드웨어개발팀장으로 복귀했다. 전자부품 업계 고위 관계자는 “박 부사장이 다시 중저가 스마트폰 기획과 개발을 책임지는 자리로 돌아왔다”면서 “세계 시장에서 삼성 스마트폰 점유율이 빠지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소폭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3일 중국 출장 중에 현지 스마트폰 매장에서 샤오미 등 저가 브랜드 제품을 유심히 살펴본 바 있다. 박 부사장 본사 복귀는 이 부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이뤄졌다.
박 부사장은 구미로 내려가기 전까지 무선 개발2실에서 중저가폰을 맡아왔던 무선사업부 핵심 임원이다. 당시 개발2실장을 맡았던 노태문 부사장은 프리미엄인 갤럭시S와 노트 시리즈를, 박 부사장이 중저가 갤럭시A 시리즈 등을 개발했다. 프리미엄인 S와 노트 시리즈는 삼성 스마트폰 브랜드 상징이면서 이익을 책임졌다. A시리즈 등 중저가 제품은 이익은 박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 부사장이 구미로 내려가자 지난해 연말 노 부사장이 개발1실(소프트웨어)과 2실(하드웨어) 통합 개발실장 자리에 앉으며 원톱체제가 됐다. 프리미엄 제품을 맡아왔던 노 부사장이 통합 개발 실장에 앉으면서 전사 역량은 자연스럽게 프리미엄에 맞춰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A와 J 시리즈 등 중저가 제품군에 대한 시장조사, 기획,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삼성 스마트폰 사업은 최근 위기를 맞았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가 신통치 않아 이익률이 떨어진데다 중저가폰 전략 부재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익률에선 애플을 넘지 못하고 출하 성장률은 샤오미와 화웨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조사에 따르면 1분기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은 22.6%로 전년 동기 대비 0.1%포인트 줄어든 반면 화웨이와 샤오미는 각각 1.6%포인트(9.8%→11.4%), 4.6%포인트(3.6%→8.2%)씩 올랐다. 경쟁사가 삼성전자 점유율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증권가에선 프리미엄폰 갤럭시S9은 첫해 출하량이 2000만대 후반, 3000만대 초반에 그쳐 S3 이후 역대 최저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지난 2분기 삼성전자 전사 영업이익은 7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가 보급형까지 내세우는 '쌍두마차 전략'을 내놓자 반도체 칩과 모듈 등 후방 부품 산업계는 긍정 변화를 기대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사건 이후 '안전'을 이유로 사실상 신규 부품공급사 등록을 받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하드웨어 혁신이 느려진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중저가 제품 경쟁력 확대를 위해선 협력사 다변화 등 공격적인 구매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