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는 1995년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둔다. 배급을 맡은 디즈니는 2편 제작을 요청한다. 문제가 있었다. 제작진이 모두 두 번째 작품인 '벅스 라이프'에 투입돼 있었다. 이럭저럭 시작은 했지만 곧 문제가 생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스토리가 꼬인다. 주인공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를 납치한 인형 수집광이 일본 사업가에게 우디를 팔아넘길 계획을 세운다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결론도 나와 있었다. 우디는 수집상에게서 탈출해 주인인 앤디에게 돌아가야 했다. 문제는 이 스토리가 너무 빤하다는 것이었다.
2006년 디즈니 최고경영자 로버트 아이거가 픽사 사장 에드윈 캣멀을 찾아온다. 어떻게 픽사의 지속 혁신이 가능했는지 묻는다. 픽사의 혁신은 어디서 왔을까.
첫째는 피어 컬처, 즉 동료의식 우선이라는 문화였다. 픽사에는 '브레인 트러스트'라는 회의가 있다. 제작자 모두가 모여서 터놓고 고민거리를 주고받는다. '토이 스토리 2'를 만들면서 생긴 동료 의식과 신뢰가 만든 전통이었다.
둘째는 '테크놀러지+아트=매직'이란 공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협력은 필수지만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을 구분했다. 의사결정은 계급을 따르고 커뮤니케이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도록 했다.
셋째는 사람이 아이디어보다 우선이란 생각이었다. 출시예정일을 8개월 남기고 존 래시터, 앤드루 스탠턴, 리 언크리치, 조 랜프트가 '벅스 라이프'를 끝내고 온다. 이들은 여자 카우보이 '제시'를 끌어들인다. 옛날 자신을 사랑해 주던 에밀리란 여자아이가 성장하자 자신을 버린 슬픔을 안고 있던 제시를 보며 우디는 머잖아 자신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며 두려워한다. 그럴 바에야 일본의 장난감 박물관이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앤디에게 돌아가기 전에 우디는 이 번민을 신뢰와 우정으로 극복해야 했고, 영화를 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낸다.
네 번째는 두 가지 신드롬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외부 영입이 대성공인 탓에 외부나 타인 문화는 배척하는 문화 현상인 'NIH 신드롬'은 별 문제가 안 됐다. 문제는 이른바 '경외심 신드롬'이었다. 픽사가 잘나가고 있으니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옳다는 생각도 바꿔야 했다.
다섯째는 명확한 가치관이다. 배급사인 디즈니는 '토이 스토리 2'를 DVD 전용으로 만들자고 했다. 캐릭터를 계속 살리되 적은 투자로 안정된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캣멀은 거절한다. 어떤 것은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은 카피를 지향한다면 결국 픽사의 가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상 우리가 캣멀의 경험을 흉내 내기는 어렵다. 그의 대학원 동료 가운데에는 훗날 실리콘그래픽스와 네스케이프를 설립한 짐 클라크나 어도비를 설립한 존 워노크가 있었다. 그를 고용한 사람은 '스타워즈' 제작자 조지 루커스였다. 그리고 픽사는 스티브 잡스가 루커스필름의 컴퓨터 디비전을 넘겨받아 만든 곳이었다.
캣멀은 픽사의 성공이 이런 '집단 창의성'에 있다고 했다. 실상 그가 찾아낸 것은 바로 '피어(Peer)'라고 부르는 그의 동료와 조력자들을 통로 삼아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식인 셈이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주변에 캣멀이 만난 현자들은 없는지. 누군가에게 그런 이가 될 수는 없을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