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금융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사가 입증 책임을 지고 감독 체계도 규정(포지티브)에서 원칙(네거티브)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변화가 예상된다. 자율성은 높이고 책임은 강화하겠다는 기조다.
모바일 기반 정보기술(IT) 채널 이용 증가에 따른 디지털 이용 격차 해소와 국가 간 규제 체계를 맞춰 소비자는 물론 금융기관 피해를 예방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보어드바이저, 오픈 뱅킹 등 디지털 기반 금융 서비스가 급증하자 정부가 해외 선진국 수준의 강력한 '디지털금융 소비자 보호장치' 마련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융상품 판매 소비자 보호 방안' 결과를 도출했다.
4차 산업혁명 기반이 될 다양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분야별로 쪼개 최적의 '신 디지털 소비자 보호 방안'을 제정하겠다는 취지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30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금융위 용역 보고서는 디지털 금융기술을 이용한 금융 서비스 규율 체계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상세하게 제시했다.
항목별로는 △규율 체계가 미비한 판매 채널 △복수 업권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디지털 서비스) 설명 의무 및 공시, 고지 규율 체계 △위탁관리 책임과 입증 책임 개선책 △정보보호 관련 소비자 보호 △오픈 뱅킹 소비자 보호 대책 등을 150쪽 분량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디지털이 접목된 금융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입증 책임을 금융사로 전환하는 '혁신안'이다. 현재는 피해 등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 디지털 특성상 소비자 입증이 더 어렵다는 점을 반영했다.
크라우드펀딩, 개인간거래(P2P), 빅데이터 등 IT를 접목한 비대면 기반 금융 서비스 이용은 폭증하고 있지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또 디지털 환경이 초개인화를 촉발, 정확한 의사결정을 못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모든 운용체계(OS)나 브라우저에 열려 있는 오픈뱅킹 확산에 따른 정보 보안 체계, 결제 서비스 해킹 등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와 배상 과정 명문화를 요구했다. 디지털 금융 시대가 도래하면서 '디지털 취약 계층'이 발생하고 IT 의존이 커지면서 새로운 규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부터 디지털금융 부문 소비자 보호를 주된 이슈로 제기하고 금융 감독 당국과 금융사 역할, 원칙 등을 재수립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럽은 오픈뱅킹에 지급결제서비스지침(PSD2)를 도입, 다양한 소비자보호 장치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국회 계류된 금융소비자보호법(안) 적용 대상 금융사의 확대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피해가 늘고 있는 P2P의 조속한 법제화도 주문했다.
자문·추천 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도 담았다. 로보어드바이저 등 IT 기반 자문서비스 금융사 책임과 의무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채널이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를 감안, 공시 방식과 설명 의무를 관리·평가하는 툴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탁 기관에 대한 강력한 관리 방안도 넣었다.
구정한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금융 체계가 체크리스트적 최소 규제 방식이다. 이 방식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규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소비자 관련 규제만큼은 규정 중심 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원칙 중심 감독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