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게임 회사에서 기술을 책임지고 있다. 현업 개발자 시절에는 출근한 뒤 밤새 쉼 없이 가동된 서버 점검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로그와 다양한 기록을 보며 과부하 흔적이나 미심쩍은 기록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 기존 제품 업그레이드부터 새 제품 개발 업무를 시작한다.
이런 일과표는 한국 개발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일정이다. 필자 역시 소프트웨어(SW) 개발사에 다니던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일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당시 필자가 속한 팀은 바쁜 일과 속에서도 '국내 최초' 수식어를 얻은 소셜 플랫폼 프로젝트를 완수하기도 했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팀원 모두의 자랑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개발 환경은 많이 변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이용 보고서나 다양한 개발 도구 등 편리하고 안정된 상태로 움직이는 개발 환경이 마련됐다. 편리하고 빨라진 개발 환경은 무결점 결과물과 빠른 생산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을 만들었다. 이제 업계 전반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세상은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어느 산업에서든 빠른 환경에 상응하는 신속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이 보편화될수록 SW를 다루는 개발자라면 한 번쯤 짚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거 개발 환경에서 당시 필자와 동료들은 '내가 이용자라면 어떨까'하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으로 개발을 했다.
지금에 비해 진행 속도가 한참 뒤처질 때는 개발 코드 행간에 이용자를 생각하고 고민할 여유가 있었다. 그것은 서비스로서 SW를 고민하는 태도였다. 보이지 않지만 코드 사이, 행간의 의미가 더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경쟁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 과정의 결과물은 종종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게임이 대표적이다.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에 이어 손끝 터치감, 화려한 그래픽으로 승부를 내던 서비스형게임(GaaS)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기 발달에 따라 모바일게임도 대용량, 고화질을 자랑하는 시대다. 게임 산업에서 이용자 반응과 의견을 취합하고 제품에 적용하는 개발 행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실제로 많은 게임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일정에 맞춘 개발보다 시장과 고객 변화에 따른 최적화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부터 정형화, 공식화된 개발보다는 이용자가 원하는 것과 운영 방향에 맞춰 서비스를 담아내고 지속할 게임을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다.
특히 기하급수로 발달해 온 하드웨어(HW)에 이어 게임이나 SW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상용 기술이 접목하고 있다. 개발자에게는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한 그릇에 담아낼 기술과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현업 개발자 시절에 '국내 최초'라는 말이 필자에게 뿌듯하던 이유는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것을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부심의 뿌리는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니 고객 입장에서 더 많은 서비스를 고민했다는 데 있었다.
빠른 개발 속도, 정확성은 시대를 불문하고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앞으로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넘쳐 나는 기술과 정보 홍수 속에 '최초'보다는 '최선'에 더 가치를 두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개발자들은 기술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최고 경험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창명 선데이토즈 기술총괄책임자(CTO) chang@sundaytoz.com
-
김시소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