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북미정상회담이 보여준 환상과 현실

[관망경]북미정상회담이 보여준 환상과 현실

하노이의 일주일이 '환상(fantasy) 영화'로 시작했다가 현실 외교의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 다큐멘터리로 마무리됐다. 기대했던 결말 대신, 기약 없는 '다음 회담'이라는 묵직한 여운만 남겼다.

회담 전 많은 전문가들은 '하노이 선언'을 두고 스몰딜과 빅딜 어느 쪽이 될 것인지 논쟁했다. '노딜'로 끝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북미는 '빈손 결말'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핑퐁식 진실게임 재연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모든 것이 '현실 외교'라는 점을 자각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선택은 어느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북미 양국은 비핵화 범위, 그리고 보상 범위를 놓고 현격한 차이만 확인했고 선택을 미뤘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다시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불길 확산을 막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시켜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중요성을 감안하면 직접 만나는 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답방 형식보다는 지난해 2차 남북정상회담처럼 비공개 실무 회담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 중재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당장 북미간 냉각기, 공백기를 메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정 시간 숨고르기도 필요해 보인다.

외교·안보 정책은 '소망'의 대상이 아니다. 환상에 젖어 조급해해선 안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 계산법이 우선이다. 여기에 이상적 명분을 절묘하게 결합돼야 교집합을 만들 수 있다. '빠른'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바른' 협상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신한반도체제를 향한 역사적인 출발선에 다시 서길 바라본다.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