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예산 수립을 위한 작업이 본격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2020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서 재정을 적극 운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힘에 따라 내년도 정부 예산은 사상 최초로 500조원을 넘는 '초슈퍼 예산'으로 편성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부 연구개발(R&D) 투자 역시 이 확장 재정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내놓은 '2020년도 정부연구개발투자 방향과 기준(안)'은 정부 R&D 20조원 시대 기조를 반영해 데이터 및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신산업을 육성하고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R&D에 예산 편성 우선순위 유지가 기대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재정 확대 기조가 재정 당국과 수행 부처 부담으로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재량 지출을 최소 10% 구조 조정하라는 것이나 신규 사업과 의무 지출 사업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도 확장 재정 운용에 대한 재정 부담만큼이나 성과 창출 부담도 한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기초연구·인재양성 지원, 혁신성장 연구개발 중점투자, 에너지·환경·재난 등 국민 삶과 직결된 R&D 지원 강화를 포함한 3개 영역 9대 분야에 대한 투자 강화를 2020년 투자 방향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면면을 보면 연구자 중심 기초 연구 투자는 2017년 1조2600억원, 2019년 1조7100억원에서 2022년 2조5200억원을 목표로 확충될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 대응과 혁신 성장 성과 가속화를 위한 R&D 투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 성장 선도 분야와 3대 전략 분야는 물론 지능형 센서 및 반도체 같은 핵심 기반 기술, AI,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 기술과 산업 공공 분야 융합 지원 강화도 언급되고 있다.
또 투자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6개 추진 과제도 제시돼 과학기술혁신본부의 R&D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단지 구체화된 예산 배분 결과가 6월 말께 돼야 윤곽이 나오는 만큼 국민과 산업의 고민을 충분히 담아냈는지 따지기는 이르지만 몇 가지 고려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성이다. 여기서 개별 전략 목표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이것만큼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설립된 후 체계화돼 이제는 정립된 듯하다.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런 활동이 '국지성 전략'에 빠져 각자 파편화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초슈퍼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의 고민은 이것인 셈이다.
물론 2019년도 R&D 예산을 돌아보면 정부 전체 예산 증가율 9.5%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20조원을 넘었다는 것은 R&D가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고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아직 예산 편성이 한참인 지금 국민 앞에 어떤 성과를 보여줄 지 한 번 더 고심해 볼 것을 조언한다. '2020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편성 결과'에도 이것이 분명히 담기기를 바란다.
모쪼록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 20조원 예산을 국민이 체감하는 R&D로 짰으면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어떻게 달성할 지 국민 눈높이에 맞춰 더 잘 답해 주면 좋겠다. 지난해 9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보고된 '2019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편성 결과'를 다시 살펴보면 어디가 허전한지 쉽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역량과 진지함을 기대해 본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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