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 시장 진입을 봉쇄한 것이다. 미국에 끊임없이 구애했던 화웨이는 다시 좌절했다.
15일(현지시간)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해외 기업의 미국 기술 위협을 막기 위해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보기술과 서비스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의 하나로 '정보 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 명령에는 미 상무부가 다른 정부 기관과 함께 150일 이내 시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행 계획에는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도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을 중지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통신장비의 보안 우려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국내 ICT와 서비스 공급망을 외국의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인은 우리 데이터와 인프라가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웨이 금지령은 이미 신호가 감지됐다. 2012년 화웨이 장비 보안 우려가 처음 제기됐기 대문이다. 그 후로 화웨이는 사실상 미국에서 퇴출됐다. 행정 조치는 사실상 명문화하는 의미다. 트럼프가 행정 명령에 서명한 것을 사실상 자물쇠를 잠구는 것과 같다. 행정 명령에는 화웨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ICT 시장에서 '외국의 적'은 화웨이뿐이다.
지난해 3분기 화웨이의 글로벌 통신장비 매출 점유율은 28%로 1위를 차지했다. 화웨이 매출 가운데 미국 비중은 0.2% 밖에 되지 않는다. 화웨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건 없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 통신장비 시장은 언제나 경쟁사 차지다. 이번 조치에 화웨이 경쟁사인 에릭슨,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는 수혜를 볼 전망이다.
생쥐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비는 법이다. 화웨이도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배제가 미국 통신망 보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미국 MIT 교수를 인용, 미국 기업과 소비자 이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취지로 보도자료를 뿌렸다.
트럼프가 화웨이 금지령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미중 무역전쟁과도 무관하지 않다. 화웨이만큼 좋은 카드도 없다. 실제 화웨이가 통신장비에 백도어를 숨기는지는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명분만 있으면 된다. 화웨이 카드를 흔들면서 미·중 무역 전쟁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어떻게 될까. 화웨이 가격 경쟁력을 높이사 통신장비를 구매한 미국 일부지역마저 퇴출될까. 미국 지방무선통신협회에 따르면 작은 지방 네트워크 회사의 4분의 1이 화웨이 장비를 쓴다. 행정 명령이 민간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퇴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서 일하는 화웨이 직원 1200명의 자리도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던진 카드를 받은 중국에 이목이 쏠린다. 과거 화웨이 창립자의 딸이 캐나다에서 체포됐을 때, 중국 정부는 국가 기밀 유출 등의 이유로 캐나다인 2명을 구금했다. 마약 밀매로 유죄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캐나다인 2명에게는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금 중인 캐나다인을 공식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분명 추가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인 중국이 미·중 무역 전쟁, 그리고 화웨이 배제의 보복 조치로 미국 국채를 팔아치울 수도 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중국은 3월 한 달 동안 204억5000만달러(약 24조3170억원) 미국 국채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반 만에 최대 규모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