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하다. 새로운 기술로 신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부가 가치를 올려야 먹고살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반도체·스마트폰·TV 부문에서 강자인 이유는 가장 먼저 산업을 시작하진 않았어도 남들보다 빠르게 투자를 늘리고 아이디어를 보태며 주도권을 잡아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산업을 시작하는 데 매우 불편한 국가가 되고 있다. 신산업일수록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해외 경쟁자가 한참 달려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결론 없는 논란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산업 진입 규제 수준이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이집트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54개국 가운데 38위다. 기반이 이렇다면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은 기업이나 창업가가 나와도 산업을 키워서 세계무대에 나가 경쟁력을 갖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유니콘기업이 진출한 상위 10개 사업 가운데 헬스케어·전기차·빅데이터 분야에는 한국 기업이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유니콘기업은 전자상거래, 핀테크, 인터넷, 소프트웨어(SW) 등 부문에서만 나왔다.
차량공유 서비스나 원격 진료는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꼽히면서도 국내에선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 스타트업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심방잔떨림(심방세동)을 측정해서 의사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진단 기기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제품을 판매하지 못했다. 규제 때문이다. 이 회사는 유럽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쪽으로 우회했다. 현대자동차는 인도 차량공유 업체 레브(Revv)에 전략적 투자, 현지 카셰어링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해외에선 이런 기회를 엿보지만 국내에선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별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꼽혀 온 우리나라가 신산업에 가장 주저하는 모양새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산업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산업은 태생적으로 기득권층 저항에 부딪힌다. 원격 진료는 의사, 차량공유 서비스는 택시기사가 각각 막고 있다.
기존 사업자와 새로운 도전자의 이해 충돌을 조율할 주체는 정부와 정치권이다. 정부도 새로운 산업을 빨리 열지 못하면 국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 보호와 향후 선거에 미칠 영향을 이유로 명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최근에는 합리적 결정과 무관하게 고위 공직자와 유력 기업가 간 불필요한 '태도' 논란만 입방아에 올랐다.
우리나라 특유의 '포지티브 규제'도 획기적으로 손봐야 한다. 정한 것만 허용하는 국가에서 기업은 새롭게 일을 벌이기가 어렵고 혁신 기업 출현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며 규제 특례를 허용하려 하지만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선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의 중기 간 경쟁품목·중기적합업종이 오히려 신산업 성장을 막는 일이 될 소지가 있다. 드론, 3D프린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은 차세대 국가 먹거리이지만 공공 시장에선 우리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된다. 자칫 산업 경쟁력 전반에 걸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중소기업이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좋겠지만 막대한 투자와 글로벌 경쟁을 감안할 때 미래 성장 동력에선 대기업이 국가 대표로 나서는 게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