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대기업에 '엇갈린 시그널' 주는 정부…기재부 “활발히 투자하라” 공정위 “규제 강화”

대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 각 부처가 대기업에 보내는 '시그널'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쪽에선 마음껏 경영할 환경을 만들겠다며 투자·고용을 늘리라 하고, 다른 한 쪽에선 대기업 규제 강화를 주장한다. “부처 간 역할 차이를 감안해도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정부가 갑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갑'이라는 틀이 짜여져 역차별을 받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슈분석]대기업에 '엇갈린 시그널' 주는 정부…기재부 “활발히 투자하라” 공정위 “규제 강화”

◇기재부 “활발히 투자하라” 공정위 “대기업 규제 강화해야”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 시절 '구걸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주요 대기업과 잇달아 간담회를 갖고 애로를 듣는 한편 투자·고용 확대를 당부했다. 각 대기업은 김 부총리 방문에 화답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삼성 방문을 앞두고 터졌다.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한국대사)이 김 부총리에게 '대기업에 투자를 요청하는 모습이 우려스럽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투자 구걸 논란이 일었다. 결국 삼성은 투자·고용 계획을 김 부총리 방문일보다 늦춰 발표했다.

업계는 장 실장과 김 부총리 간 '인식차'에 주목했다. 과거 재벌개혁 운동에 앞장서 온 장 실장은 대기업을 '협력'보단 '규제'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강한 게 아니냐는 평가다. 청와대와 기재부 간 엇박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기업은 경영전략 수립에 혼란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대기업과 만날 계획이다. 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경영 애로가 무엇인지 듣는다. 1기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하기 위한 자리다.

홍 부총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6월 5~6개 업종별로 기업 투자와 관련해 대기업을 만날 것”이라며 “첫 번째로 석유화학 업종과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업종별 대기업 관계자와 같이 애로 해소, 투자 요청, 애로 경청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 서슬이 퍼렇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국회에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 규제 강화 사안이 여럿 담겼다. 일감 몰아주기 대상 확대, 대기업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의무 보유 계열사 지분율 요건 상향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흔들림 없는 재벌개혁'을 강조했다. 경기 부진을 고려해 공정위 감시망이 다소 느슨해질 것이란 일각의 예측에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일관돼야 한다”면서 “부처 간 역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대기업 관련 정책에 있어 차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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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갑' 프레임에 한탄만

갑을문제 해결은 문재인 정부 대표 성과로 꼽힌다. 공정위 등 범부처 노력으로 다양한 '을'의 권익이 향상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선악 구도가 짜여져 대기업이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갑을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대기업은 무조건 갑이고, 강한 규제를 적용받아야 하며, 어느 정도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면서 “타당한 목소리, 정당한 요구도 '대기업이기 때문에' 내놓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협력 관계에 있는 중견·중소기업이 대기업 약점을 포착, 공정위 등에 신고하기 전에 협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공정위 시선이 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대상 횡포는 사각지대로 남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자율협약' 형태 정책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공정위는 작년 12월 편의점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자율규약을 성사시켰다. 최근에는 가맹분야 장기점포(계약갱신요구권 인정기간 10년이 경과된 가맹점)의 안정적 계약갱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업계의 자발적 상생 노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협약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자율협약에 불참하면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 정부가 행정지도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 국회 눈치를 보느라 마지못해 협약에 참여하는 대기업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