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대한민국 국회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자시스템으로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오프라인 발의 경로를 물리적으로 봉쇄하자 민주당은 전자입법 카드를 꺼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시스템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날 전자입법은 시스템 도입 후 14년 만에 처음 실제로 사용된 '역사'로 기록됐다.
그만큼 우리 국회는 후진적이었다. 낡은 관습에 묶여 오프라인 법안 발의를 고집했다. 의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입법 보다는 서류봉투라도 들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식을 선호했다.
국회도 2005년 전자입법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이후 사실상 방치했다. 시스템 사용 홍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입법 실무를 책임진 의원실 보좌관은 문서를 스캔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이용 절차 때문에 시스템을 외면했다. 'IT강국'과 동떨어진 국회의 모습이다. 대신 국회에는 '동물국회' '식물국회' 같은 오명만 따라다녔다.
국회가 불명예를 벗기 위해 4차 산업혁명 신기술로 변화를 꾀한다고 한다.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국회사무처,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 등 지원기관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융합한 입법업무 지원시스템을 도입한다. 정보화전략계획(ISP), 연구용역 사업 등으로 신기술 기반 구축 그림을 그린다는 소식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기관 업무보고를 받을 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회 역시 제도와 시스템 개선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시스템을 만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실책을 재현해선 안 된다. AI와 빅데이터 활용에 관한 현장 업무요구 발굴부터 제도개선까지 촘촘하게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국회의원의 인식을 바꾸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회가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대한민국 국회상을 그리길 기대한다.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